[장석주의 시각] 뇌가 만든 기적들

입력 2022-11-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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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따뜻한 잔치국수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도, 변성기가 왔던 시절 이마가 희고 반듯한 소녀를 혼자 연모한 것도 다 내 뇌의 작용 탓이다. 뇌가 없다면 처음으로 클래식 연주회에 갔던 일도, 그리스의 섬 산토리니에서 넋을 잃고 바라본 황혼의 풍경도 다 기억할 수 없다. 인간은 느낌, 지능, 의식을 갖고 살며, 자연 환경에서 최적화된 삶을 설계하고 그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진화의 핵심에 인간 뇌가 있다. 뇌 진화의 핵심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데 있다. 뇌에 감각 데이터가 입력된 뒤 이것을 기반으로 지각을 바꾸고, 결국 모든 지각은 행동을 산출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뇌는 신경 세포들이 뭉쳐 큰 군집을 이룬 덩어리다. 최소 26억 개에서 최대 1000억 개에 이르는 신경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실핏줄이 많이 분포되어 분홍빛이고, 깊은 굴곡과 잔주름이 있는 형태이며, 인간의 중추 신경계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뇌는 우리가 사랑하고 생각하는 데 관여하는 기관, 즉 인간 감정과 인지와 행동의 작동 기제의 중추다. 두개골에 봉인된 이것은 기억과 생각의 기반이고, 감정과 언어의 생성과 습득을 주도한다. 뇌의 핵심 임무는 이성이나 감정, 상상이나 창의성의 산출이 아니다. 뇌는 타인들로 이루어진 세계와 연결된 일종의 네트워크로 그 핵심 임무는 거의 모든 행동을 예측하고 아주 복잡한 인간 신체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뇌는 신체가 요구하는 최적화된 생활의 설계를 짜고 그걸 실행하는 데 들어가는 ‘신체예산’을 짠다. 뇌 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은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생존을 위해 에너지가 언제 얼마나 필요할지 예측함으로써 가치 있는 움직임을 효율적으로 해내도록 신체를 제어하는 것, 곧 알로스타시스를 해내는 것이다.”(‘뜻밖의 뇌과학’)라고 말한다.

뇌는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든지 항상 그 이상이다. 신경해부학과 신경과학의 획기적인 연구와 발견들로 뇌의 구조와 기능, 뇌 미스테리의 상당 부분이 밝혀졌지만 우리의 뇌는 여전히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수십억 개의 뉴런이 뒤엉켜 있는 회색 물질인 뇌, 우리 몸 안의 작은 우주, ‘마음의 연금술사’이며 1400그램에 지나지 않는 이 대단한 도구로 인류는 지구를 지배하고 인류세를 일군다. 정작 뇌엔 아무런 빛도, 소리도 없고, 그저 완벽한 어둠과 침묵이 지배할 뿐이다. 이 뇌가 지각과 인지 활동을 하는 데 외부에서 오는 감각 입력과 함께 전기적 신호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 뇌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의 장벽을 뛰어넘어 작동한다.

1938년 12월 22일, 히틀러가 권력을 틀어쥔 독일이 우라늄의 원자핵 분열의 성공 소식에 아인슈타인과 일단의 과학자들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탄원하면서 미국은 뉴멕시코 주에 비밀연구소를 건설하고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원자폭탄 개발 연구에 뛰어든다. 13개 주 37개 시설과 대학 부설연구소 12곳, 10만 명이 투여된 국가사업이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 주 사막에서 플루토늄 폭탄 실험에 성공하고, 8월 6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명령으로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된다. 이걸로 히로시마 인구 30만 중 반이 죽고, 나머지는 방사능 영향으로 암 같은 질병으로 평생 후유증을 앓는다.

이 개발의 총 책임자가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이론물리학자다. 오펜하이머는 1925년에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벤디시 연구소(물리학 연구소)를 거쳐, 독일 괴팅겐 대학교의 막스 보른 밑에서 이론 물리학, 그중에서 양자역학의 화학에의 응용분야인 스펙트럼의 양자론을 연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장이 되어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1950년 수소폭탄 연구에 반대하다가 모든 공직에서 쫓겨나는 등 수난을 당하던 중 그는 이탈리아어를 겨우 한 달 학습한 뒤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어 원서로 읽는 믿기 힘든 기적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의 대학에서 강의 요청을 받은 뒤엔 6주 동안 네덜란드어를 독학으로 익혀 네덜란드 대학에서 네덜란드어로 강의를 하고, 나중엔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인도의 경전을 읽는다. 언어학자가 아니고 물리학을 전공한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보여주었듯이 낯선 외국어를 4주 만에 습득하는 무한 잠재력을 가진 게 인간의 뇌다.

척추동물의 뇌는 기본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다. 거의 무한대의 잠재력을 가진 인간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성된다. 좌뇌가 언어능력에 특화된 뇌라면 우뇌는 창의력과 관련된다. 좌뇌가 외부 지식을 언어와 논리로 습득하는 반면 우뇌는 이미지로 전환해서 받아들인다. 대체로 예술가나 천재들 중에 우뇌가 발달한 사람들이 많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아인슈타인, 이들은 어릴 때 같은 질병을 앓는다. 난독증! 에디슨은 공립초등학교의 수업을 못 따라가서 결국 홈스쿨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난독증은 좌뇌 발달 장애인데, 에디슨은 각고의 노력으로 그걸 극복한 뒤 위대한 발명품을 잇달아 내놓는다. 아이슈타인도 중고등학교 시절엔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1896년 스위스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통과하는데, 이때 대수학, 기하학, 물리학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만 어학 과목에서는 낙제점을 받는다. 취리히 공과대학 입시에서 실패하고, 대학 졸업 뒤에도 직장을 얻지 못하다가 베른 특허국에 자리를 잡으며 실업자 신세를 벗어난다. 특허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아인슈타인은 물리학 연구에 열정을 쏟아부으며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이론 들을 연이어 내놓는다. 8년 동안 연구에 몰두하며 ‘가속계(accelerating frame)와 중력계(gravitating frame)의 물리 법칙은 구별할 수 없다’는 가설을 세우고 일반상대성이론 창안에 착수한다. 이 성과들로 1909년 취리히에서 대학교수 자리를 얻고, 1921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받기에 이른다. 보통 인간은 평생 자기 뇌 역량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쓴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자기 뇌 역량의 20퍼센트를 쓰는 것만으로 천재성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뇌, 생각의 출현’이라는 대중 과학서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박문호 박사는 뇌를 가리켜 “다양한 하위 시스템이 무작위로 작용하는 복잡계가 아닌, 복잡하게 만들어진 목적 지향적인 하나의 복합계”라고 말한다. 인간은 이 복합계의 작동을 통해 감각과 지각, 기억과 의식을 기반으로 언어와 문화의 습득, 미래에 대한 의식 등등이 가능하다. ‘나’라는 의식은 뇌 세포의 집합적 활동이라고 할 때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은 뇌 활동의 가능성과 겹쳐진다. ‘나’의 마음, 의식, 영혼은 다름아닌 내 뇌의 작동 결과이다. 알면 알수록 인간의 뇌는 경이로운 대상이다. 이 경이로운 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뇌 구조와 핵심 프레임, 뇌의 다양한 활동을 배워야 한다. 우리 뇌는 학습을 통해 인지 능력을 키울 수 있고, 경이로운 지능, 상상력과 창의로 가득 찬 마술상자로 변화시킬 수 있다. 내가 뇌과학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남과 다른 창의력을 발휘하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뇌에 대한 탐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늘날같이 폭발적으로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는 세계에서 복잡한 난관들을 뚫고 나가려면 낯선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을 혁신하는 뇌, 결단과 의지와 결단을 행동으로 옮기는 뇌가 필요하다. 나와 당신은 이 무한공간으로 뻗은 우주에서 뇌라는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한다. 이 여행이 경이로운 뇌를 기반으로 일군 삶의 기적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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