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찜찜한 '바이코리아’

입력 2022-11-08 10:51 수정 2022-11-0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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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금융감독원 전산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곧바로 돈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외국인 한도확대 조치가 내려질 때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오전 8시 전산을 통해 선착순으로 접수가 시작되면 증권사들은 외국인 투자자의 요청 물량을 잡기 위해 컴퓨터에 매달렸다.

외환위기를 겪은 후 특정 산업을 제외하고는 무제한 직접주식투자가 허용된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원·달러 환율이 최고 1400원대까지 치솟고, 레고랜드 발 신용리스크가 터진 이후 이후에도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거침이 없다. 10월 한 달 동안 3조3000억 원어치 주식을 사들였고, 11월 들어서도 1조6000억 원 넘게 순매수했다. 공매도했던 주식을 되사 메우는 ‘숏 커버링’이든, 자산 구성에 변화를 주는 방식이든, ‘바이(Buy) 반도체’ 현상이든 외국인의 이 같은 주식 대량 매수에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특히 올해 들어 9월까지만 해도 이들은 한국 증시에서 주식을 12조 원어치나 순매도했던 터라 더욱 그럴 만하다.

때마침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아시아·신흥국 주식전략: 한국과 대만을 살 것’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과 대만의 투자의견을 ‘비중확대(Overweight)’로 상향했다. 모건스탠리는 “신흥국과 아시아태평양 주식시장에서 1995년 이후 가장 긴 베어마켓(약세장)이 진행되고 있다”며 “새로운 사이클에서의 가장 좋은 기회는 아시아 주식시장에서의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과 대만 시장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외국인의 ‘사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한국경제 여건이 유독 좋아서가 아니라 이웃의 위기에 무임승차한 것 아닌가 하는 찜찜함에서다. 예를 들자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에 대한 우려로 이른바 ‘차이나런’(중국 회피)이 나타나면서 한국증시가 얻는 반사이익이다. 마치 과제물을 잔뜩 넣어둔 가방을 두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닌지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나라 바깥에서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글로벌 중앙은행이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최근 발표된 다른 경제 지표에서는 경기 침체가 감지된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는 지난 9월 한 때 7.16%를 기록하면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글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도 3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하며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북미의 BMO 금융그룹이 미국 성인 34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가 경기침체가 임박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각국의 정책 선택은 비상사태 그 자체다. 정부와 의회가 끊임없이 의견을 수렴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다급한 상황 인식 때문일 것이다.

안에서는 곳곳에서 경기침체 신호가 나오는데 신용리스크까지 시장을 덮쳤다. 지난달 수출은 1년 전보다 5.7% 감소해 2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9월 경상수지는 흑자를 냈지만, 무역수지는 67억 달러 적자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7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졌다. 한국 가계는 자산의 60%가량이 집인데, 집값 내림세가 심상치 않다. 제2금융권과 기업들은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발 위기설이 널리 퍼졌다. 지난 3분기에 발행된 회사채 가운데 A 등급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아 미매각률이 58%에 달했을 정도다. 공공기관들의 채권까지 안 팔릴 정도다. 급기야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최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50조 원+알파(α)’ 규모의 긴급 자금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지만,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글로벌 신용시장에서도 한국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흥국생명은 최근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콜옵션 행사)을 하지 않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했다. 실익도 챙기지 못하고, 한국기업들까지 ‘못 믿을 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글로벌 경제가 다시 좋아져 우리가 무임승차 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우리의 피땀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기업 활동이고 민생이고 모두 내팽개친 채 정치권은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개싸움(문재인 전 대통령의 풍산개 반환 여부를 놓고)까지 하고 있다. 언제까지 정쟁만 할 것인가. 흔들림 없는 기초체력만이 외국인의 바이코리아가 지속할 수 있는 외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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