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사이] ⑨ 신냉전을 바라보는 유럽의 속내는?

입력 2022-09-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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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가치로는 미국 편이지만…EU 회원국간 입장차 ‘단일대오’ 어려워

‘중국은 라이벌인 동시에 파트너다’(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G7은 중국에 적대적 클럽이 아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중국과 신냉전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중국이 서방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미·중 간 신냉전을 바라보는 유럽 핵심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입장이다. 미·중 간 충돌이 격화되자 또 하나의 세계 핵심축인 유럽이 과연 어느 편을 들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유럽도 ‘안미경중(安美經中)’ 프레임

유럽은 글로벌 리더십의 한 축으로 유럽이 미·중 신냉전을 어떻게 보느냐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기치를 내걸고 국제질서를 유지해 온 미국과 유럽은 이념적, 역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과거 2차 세계대전으로 분산되고 무너진 유럽은 미국의 대규모 대외원조 사업인 마셜플랜을 계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49년 소련 및 동유럽의 사회주의 진영에 맞서고 자본주의 옹호를 위한 군사 협의체인 나토로 뭉쳐진 안보동맹이다.

그와 반대로 유럽과 중국은 경제적인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와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유럽은 지난 30년간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1990년 32%에서 2020년 21%로 줄었다. 영국을 제외할 경우 약 18% 수준에 그친다. 반면 중국은 17.4%로 급성장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년대 재정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겪었지만, 중국의 대유럽 투자가 확대되고 교역량이 늘어나면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만약 중국이라는 경제 대국이 없었다면 유럽의 경제성장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유럽 경제와 중국은 매우 밀착되어 있다. 유럽 내 중국 경제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2020년 중국과 유럽연합(EU)의 교역량은 5860억 유로(약 782조 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미국(5550억 유로)을 제쳤다. 2021년 유럽의 대중국 수출은 3099억 달러로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유럽 주요 국가들의 중국과의 경제무역 관계를 보면, 영국의 2021년 1분기 대중 수입액은 169억 파운드로 중국이 독일을 제치고 최대 수입국에 올랐다. 독일은 2021년 기준 중국이 2위 수출 국가이자 1위 수입 국가이다. 이탈리아는 2019년 주요 7개국(G7) 중 처음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했고, 2020년 기준 중국 기업 400곳 이상이 이탈리아 기업 760곳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을 만큼 중국과 투자로 얽혀 있다.

결론적으로 유럽 또한 한국처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프레임에 빠져 있다. 2018년 미·중 간 무역전쟁이 본격화되고 점차 기술패권 경쟁으로 확산될 때도 유럽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자적 스탠스를 지켜왔다. 홍콩 민주화, 신장 인권문제가 대두되었을 때는 미국과 함께 인권, 민주 등 보편적 가치의 통일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견제를 위한 경제적 압박과 제재 때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면서도 “중국은 이제 글로벌 행위자다. 우리는 경제협력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파트너이지만 매우 다른 정치체계를 가진 경쟁자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는 건 나쁜 생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미·중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는 다자주의로 가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 29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유럽연합(EU) 간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TTC) 참석자들이 자율주행자동차 기업 아르고를 견학하고 있다. 왼쪽부터 발디스 돔브로프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브라이언 살레스키 아르고 최고경영자,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마그레데 베스타거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지난해 9월 29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미국-유럽연합(EU) 간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TTC) 참석자들이 자율주행자동차 기업 아르고를 견학하고 있다. 왼쪽부터 발디스 돔브로프스키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브라이언 살레스키 아르고 최고경영자,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 마그레데 베스타거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지난해 미·EU TTC 출범 중국 견제

사실 독일은 중국이 2015년 독일의 ‘인더스터리 4.0’을 모방해 만든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당시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또한 중국 종합가전기업인 메이디가 세계 4대 산업용 로봇기업인 쿠카 인수를 시작으로 에너지, 항공, 미디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면서 중국으로 국가안보 및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의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2020년 10월부터 ‘외국인투자 심사규정’을 통해 차이나머니의 유럽 핵심기술과 인프라에 대한 직간접적인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의 기술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2021년 9월 29일 미국-유럽연합 간 제1차 무역기술위원회(TTC)를 정식 출범시켰다. TTC는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공통의 규제 방안 마련 및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협의체로 2020년 유럽이 미국에 주동적으로 제안해서 출범한 것이다. 문제는 EU 28개 회원국마다 입장 차가 있고 미-EU 간 무역제도의 차이도 존재하기에 향후 미국이 생각하는 중국 기술굴기 견제를 위해 TTC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유럽과 중국은 2003년 수립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기반으로 전략적 파트너로서 협력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2013년 시진핑 주석의 등장과 2015년 산업고도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에 따라 경쟁적 협력관계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홍콩 보안법, 신장 위구르족 인권 등의 이슈가 본격화되면서 중국을 체제적 라이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19년 EU 집행위원회가 작성한 중국전략 문서를 보면 중국에 대한 인식변화가 잘 나타나 있다. 중국의 성장과 굴기가 가져올 유럽의 위기와 그에 대한 경쟁 관계 설정, 그리고 유럽의 가치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중국과 유럽 관계는 복합적이다. 유럽의 관심 분야에서는 협력 파트너이고, 이익균형을 위한 협상 상대자, 핵심기술 분야의 경제적 경쟁자, 거버넌스의 대안적 모델에 관한 체제적 라이벌이 상존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유럽이 중국을 다시 보는 계기가 있었다.

“중국을 쉽게 봤다, 유럽이 순진했다”

첫째, 2020년 중국발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면서 반중 정서가 확산되었고, 세계보건기구의 친중적인 접근에 대해 유럽은 더욱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둘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중국의 친러시아 입장을 보며 유럽은 “우리는 중국을 너무 쉽게 보았고, 유럽이 그동안 순진했었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과 유럽의 결속을 강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EU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인식은 단순히 민주주의, 법치, 인권, 시장경제의 기본가치 준수를 넘어, 천연가스라는 실질적인 이슈가 러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데다, 유럽은 대륙을 나눠 쓰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정치적 군사적 위협이 실재한다.

현재 EU가 미·중 간 양자택일에서 미국 편에 서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중국을 적대시하는 입장으로 급선회하기는 쉽지 않다. 지식재산권 침해, 산업보조금 등 불공정 무역행위와 사이버 및 기술안보 측면에서 유럽은 중국 견제의 수위를 조절하며 대중 경제의존도를 줄여 적과의 동침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원론적으로 중국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경제적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중 신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2022년 1분기 중국과 EU 간 교역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2.2% 증가했다. 유럽이 일방적으로 미국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외교 안보적인 측면에서 EU 이사회나 정상회의에서 대중 견제 안건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회원국 한 곳만 반대 입장을 표명해도 EU 전체의 입장 채택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스, 헝가리,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과 같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매우 깊게 연결되어 있는 국가들의 경우 중국 제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2017년 9월 유엔에서 EU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성명을 채택하려고 할 때 그리스가 반대한 사례도 있다. 유럽이 미국 편에 확실히 서서 중국 봉쇄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EU 내부 단결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국가별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유럽은 美 리더십에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 유럽 내에서 미·유럽 간 동맹체제인 이른바 ‘대서양 동맹’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유럽체제 혹은 다자체제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도 미국에는 불리한 상황이다. 미국, 영국, 호주의 안보협력체 오커스 출범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 자국 중심인 미국만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을 지렛대로 적절히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럽은 미국 리더십에 중독되어 있었다’라고 말한 야프 데 후프 셰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의 말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미국과 EU는 70년을 함께한 동맹인데 어떻게 보면 애증의 동맹관계일 수도 있다. 중국을 강하게 견제해야 하는데 EU가 발만 들여놓고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케이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말한 “미국인은 화성에서 유럽인은 금성에서 왔다”라는 표현이 미국과 EU 관계를 가장 쉽게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 방문학자와 함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현재 미주리 주립대학에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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