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도덕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

입력 2022-08-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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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민생안정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도덕적 해이’ 논란에 휩싸인다.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의 채무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금융 지원도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비판에 부딪쳤다.

자영업자 금융애로 완화대책의 골자는 10일 이상 연체하는 부실우려차주의 대출은 장기저리로 조정해 주며, 90일 이상 연체하는 부실차주의 대출은 원금의 60~90%를 탕감해 주는 것이다. 이자를 연체하고 원금을 상환하지 않을수록 큰 혜택을 보게 된다. 당연히 상환능력이 있어도 빚을 갚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이기적 인간의 합리적 선택인데, 이를 ‘도덕적 해이’라 부른다.

도덕적 해이는 매우 어려운 용어이다. 학술적으로 도덕적 해이는 기회주의(opportunism)를 뜻한다. 기회주의는 ‘공격적 이기주의’로 ‘속임수를 사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self-interest seeking behavior with guile)이라 정의된다.

도덕적 해이가 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아니다. 법은 하지 말라는 ‘악한 행위’를 규정하고 도덕은 하라는 ‘선한 행위’를 규정한다. ‘나쁘게 살지 마라’는 법의 영역이고, ‘착하게 살아라’는 도덕의 영역이다. 도덕적 해이는 법과 도덕의 경계에서 법은 위반하지 않지만, 도덕도 지키지 않는 행위를 칭한다. 영어 원어는 Moral Hazard로, 직역하면 ‘도덕적 해악’이라 할 수 있는데 도덕 관념이 ‘느슨하다’는 의미를 담은 ‘도덕적 해이’로 번역한 것은 재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덕적 해이가 회자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있다. 대기업이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위해 은행에서 차입하고 이를 상환하지 못해 은행의 국제신용도가 떨어져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 당시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동원해 부실대기업과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해 연명시켜준 것이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고 지적되었다. 그 이후 신용카드 대란, 닷컴 벤처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거품 등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개인과 기업의 부실을 정부가 예산으로 메워주면서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원래 우리나라는 도덕 사회의 뿌리가 매우 강하다. 세칭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면 도덕적으로 흠 없이 완벽한 인격을 기대한다. 국회의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얼마나 정책 능력이 뛰어난가보다 사생활이 반듯한가를 따져 묻는다. 공직자가 아닌 사업가나 연예인에게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민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말 한마디 실수해 매장당한 사례는 흔하디흔하다. 아마, 사회적으로 성공하려면 몸가짐을 잘해야 한다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유교적 전통이 남아서일 거다.

그런데 이처럼 도덕적인 사회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도덕적 해이를 시사하는 속담과 격언은 무척 많다. ‘토사구팽’, ‘양두구육’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 ‘화장실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르다’, ‘나무에 올려놓고 흔든다’ 등등.

도덕을 강조하면서 도덕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는 엄격한 도덕을 요구하면서 본인 스스로는 도덕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과 남에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도덕적 이중성을 가리키는 대표적 표현이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느슨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위계적 사회 질서에서 강자는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약자는 보호본능을 좇아 도덕 관념이 허술하다. 경제적 풍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도덕적 기준이 흐트러진다. 부자가 돈을 벌려면 도덕을 외면해야 하고, 서민은 먹고사는 일이 급하니 도덕을 찾을 여유가 없다. 학교부터 직장까지 등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도덕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세상에서 한가롭게 ‘도덕 재무장’을 이야기하면 시대착오적 꼰대라고 손가락질당하기 십상이다.

도덕을 말하면서 도덕을 행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는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훼손하는 가장 심각한 질병이다.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라는 증상이 우리 사회 곳곳을 병들게 한다. 자신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누리려 하거나 노력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원하는 감염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정치인은 민생을 외면한 채 권력투쟁에만 몰입한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은 권한을 남용해 사리사욕만 챙긴다. 기업주는 회삿돈을 빼돌려 자기 배만 불리고 노조는 회사가 망하건 말건 임금만 올려달라고 투쟁한다. 부도덕한 권력자가 예산 퍼주기로 표를 얻는 포퓰리즘도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기 때문이다.

참, 남 이야기할 것 없다. 나 스스로를 돌이켜 봐도 도덕적으로 별로 나을 게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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