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통신]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 소리를 내면, 그게 오리”

입력 2022-08-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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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인데 경기침체가 아니라는, 공허한 옐런의 진단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둔화를 겪고 있지만 침체 상태는 아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28일 미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현재 노동시장이 안정적이고, 가계 재정이 호전되고 있으며 소비지출이 증가하고 있어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세로 접어들고 있다”며 침체론이 확산하는 걸 진화하려 애썼다. 사상 유례없는 인플레이션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 대란,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세계의 이목이 미국 경제의 향방에 쏠려 있는 터라 각국 이코노미스트들은 그의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미국 내에서는 그의 진단을 어디까지 수긍할까. 미국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재무장관이나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통상 경제 진단과 전망을 제시할 때 반드시 ‘예고’를 통해 여론의 반응과 검증을 거친다. 금리를 인상할 때도 몇 사람이 모여 정해서 고지하는 게 아니라 공개시장위원회나 지역 연방은행장들이 세미나 등을 통해서 이대로 가면 다음 번엔 어느 정도의 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전망치를 넌지시 언론에 흘려 반응을 떠본다.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지대하기 때문에 모자라서도 지나쳐서도 안 되는 최선을 택하기 위한, 일종의 경제정치적 지혜라고나 할까. 소비자들은 그런 예고를 감안해 소비를 절제하거나 투자를 달리함으로써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고, 정부는 인플레이션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시쳇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반응이 싸늘하다. 두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내디뎠으니 9월에는 빅 스텝(0.5%포인트) 정도로 맞추면서 연착륙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이나 현장에서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들불처럼 확산하고 있고, 체감물가는 통계수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소비는 위축되고, 주식시장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말 발표된 국내총생산(GDP)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1분기 0.4%, 2분기 0.2%의 마이너스 성장을 각각 기록했다. 통상 2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하면 침체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미 침체기에 들어 간 거 아니냐’는 게 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경제전문가들도 같은 결과를 놓고 옐런 장관과는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소비지출이 늘고 있다는 옐런 장관의 주장에 대해 다이앤 스원 KPM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0.3%, 1% 증가한 것은 과거 평균 2.1%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저조한 수치”라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도 소득 측면에서도 명목소득 증가율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있다며 옐런 장관의 낙관론에 제동을 걸었다. 2분기 명목소득이 1.6% 늘었지만, 물가가 1.7% 늘어 실질소득이 0.1% 줄었다는 것. 팬데믹 초기에는 워낙 불경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두 달 만에 침체 선언을 한 적이 있는 데, 통상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침체로 간주하는 게 전미경제연구소의 통례라는 점을 인용, 지금 상황을 굳이 부인할 이유가 없다는 게 뉴욕타임스 주장이다.

▲뉴욕시 교외 지역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 내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이 텅 비어 있다. 물가가 폭등하고 금리가 잇따라 오르는 등 가계에 주름살이 드리워지자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크게 줄이려는 탓으로 보인다.
▲뉴욕시 교외 지역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 내부.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이 텅 비어 있다. 물가가 폭등하고 금리가 잇따라 오르는 등 가계에 주름살이 드리워지자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크게 줄이려는 탓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1%로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지표만 보면 소폭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채소와 고기 등 원재료, 레스토랑 음식값은 최근 1년 사이 20~40%가량이나 폭등했다. 주말 외식조차 어려운 게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다. 수퍼마켓도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민망할 정도로 한산하다.

도시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피자 전문점에서 점심에 피자 한 조각에 음료수 한 병을 살 경우 1년 전에 5달러(약 6500원) 하던 것이 7달러로 올랐다. 무려 40%가 오른 것이다. 맥도널드, 버거킹 등 서민들이 즐겨 찾는 주요 패스트 푸드점들도 저가 메뉴를 없애고, 메뉴를 바꾸면서 값을 20~30% 올렸다. 맨해튼 등 주요 도심지 레스토랑들은 점심 시간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고, 직장인이 많이 밀집된 오피스타운 레스토랑들은 이들이 사업상 갖던 ‘비즈니스 런치’마저 재택근무 확산으로 급격하게 줄고 있다고 울상이다. 음식값은 내년에도 2.5~3.5%까지 오를 전망이라고 하니 “침체는 아직…”이라는 옐런 장관의 말은 서민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증세가 뚜렷한데 억지로 진단을 달리한다고 병이 낫지는 않는다. 미국인들 속담에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 소리를 내면, 그게 바로 오리’라는 말이 있다. 침체 징조가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서민들의 아우성이 들리면, 그게 곧 경기침체 아닌가. 재닛 옐런 재무장관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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