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밥은 먹고 다니시나요?

입력 2022-02-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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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행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은 먹었느냐”는 일상적 표현과는 확실히 다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주인공이 범죄 용의자에게 던지는 이 말은 ‘네놈이 사람이냐’라는 힐책과 냉소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평이한 어조로 일상에서 던지면 여전히 쌀쌀한 어투이긴 하나 ‘어떻게, 잘 살고 있느냐’는 안부이기도 하고, ‘먹고 살 만하냐’와 비슷하게 같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연대감 느낌도 난다.

‘밥’으로 비유되는 존재와 관계에 대한 표현이 워낙 많기도 하거니와 밥을 대하는 태도나 한식문화를 두고 ‘먹는 거에 진심인 한국’이라고도 한다. 근래 한류의 확산에 힘입어 한식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지고 있고, 실제로 지난해 농수산식품 수출액은 역대 최초로 100억 달러를 넘고, 전년보다 15.1%나 증가한 113.6억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정말 밥에 진심인가?

이따금 이발도 할 겸 해서 서울 종로 탑골공원 인근엘 간다. 이곳은 꽤 오랫동안 어르신들이 소일하는 공간으로 젊은이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근 골목의 한옥들이 상점과 음식점으로 변모하며 구도심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공원 인근에는 저렴하게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국밥집들이 있다. 워낙 소박하고 막걸리 잔술을 파는 포장마차도 있는 이곳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다보면 그래도 서울 시내인데 어떻게 이 가격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다 얼마 전에 식당 구석에 놓인 쌀포대를 보게 되었다. 수입 쌀이었다. 어차피 수입하게 된 쌀이지만, 그래서 근래에는 미국산, 태국산 식용 쌀도 많이 거래되지만, 저렴한 밥값을 유지하기 위해 어르신들에게 수입 쌀로 지은 밥을 드린다는 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막걸리도 수입 쌀로 빚은 게 훨씬 많지만, 어르신들 식당 밥을 이렇게 대하는 건 아니다 싶다. 아이들에게 급식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제공한 지 10년이 넘었다. 아무리 시장 영역이라지만 사회의 선배들을 그리고 농민들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모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시장 때부터 이 동네에 어르신문화거리 조성사업으로 환경개선이나 문화공연 지원 등이 소소하게 있었고, 실버상권을 안내하는 싼집지도 제작이 있었을 뿐이다. 정말 우리는 밥에 진심인가?

근래 들어 에너지 전환 등의 이유로 유가가 90달러를 넘고,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전 세계 물류가 원활하지 못하여 국내 물가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농식품 수출이 늘었다고 하지만 국내 농업의 활력으로 연계되지 않는다. 대부분 다른 산업처럼 원재료를 수입해 가공하여 수출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곡물과 유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곡물 수입국들의 소요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2008년과 2011년의 지중해 연안지역 재스민 혁명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상황을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전체 물가가 오른 애그플레이션이라 칭했는데, 국내에서도 상당한 물가 상승이 있었으나 그나마 주식인 쌀을 자급하는 수준을 유지하여 소요까지는 가지 않았다. 재작년에 쌀이 흉작이라 염려했고 그나마 작년도 생산이 안정되어 다행이라지만 곡물자급률은 21%로 더 낮아진 상황이다. 석유산업상품, 무기, 반도체, 배터리를 팔아 필요한 농축산물을 수입하면 된다는 안이한 인식과 정책으로는 안 된다.

아무리 달러가 많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식량자급으로는 결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식량안보, 나아가 식량주권 차원에서 농업·농촌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유일한 탄소 흡수원인 토양의 건강함을 회복하기 위해 지속가능 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펴낸 한 농촌사회학자의 표현대로 ‘세상의 모든 먹거리는 농촌과 사람이 촘촘히 엮여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촛불의 부름을 받았음에도 현 정부는 사회불균형 완화, 농업·농촌의 재생, 식량안보의 확충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다음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에도 실천적으로 나서야 한다. 시대적 과제의 주요 고리인 농업·농촌을 누가 제대로 인식하고 정책 실천에 나설 것인지 똑바로 살펴보고 투표해야 한다.

어떤 밥을 어떻게 먹는가는 한 사람의 생존과 존엄이며 한 사회의 투영이다. 나의 먹거리 선택과 같이 나의 투표가 나와 다음 세대가 어떤 밥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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