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와 프로크루스테스의 공통점

입력 2021-12-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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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솜 산업부 기자

프로크루스테스는 행인을 잡아 철제 침대에 맞춰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키가 작으면 강제로 다리를 늘려 죽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다. 목적 달성을 위해 정해진 틀이나 기준에만 맞추도록 강요하는 아집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기업을 이 침대에 강제로 끼워 넣고 있는 일이 생겼다.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다.

NDC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만큼 비현실적이다. 지난 10월 탄소중립위원회는 NDC를 2018년 대비 35%에서 40%로 상향했다. 그러나 한국은 G5 평균 대비 탄소배출량 감축 기간이 약 20년 이상 짧다. 산업계에서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 목표치가 과도해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물론 기후위기가 현실로 닥쳐온 상황에서 온실가스 감축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다.

비현실적인 NDC 상향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오히려 다른 문제까지 낳을 수 있다. 탄소 감축을 달성하려다가, 오히려 생산량과 일자리 모두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단기간 내 획기적 탄소 감축 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생산량을 줄이거나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

결국, 얼마나 줄일 지보다 어떻게 줄일지가 중요하다. 향후 산업부문 탄소 감축은 획기적 탄소 감축 기술 개발 여부에 달려있다. 한국은 탄소감축 기술 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탓에 기술 격차가 4~5년가량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주요 다배출업종의 에너지 소비ㆍ탄소배출 효율도 이미 최고 수준이어서 추가적 감축 여력도 제한적이다. 정부가 획기적인 탄소 감축 기술 확보를 위해 정책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선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사실 프로크루스테스는 자신도 그 침대보다 컸다. 결국, 그도 테세우스에 의해 자신이 만든 침대의 길이만큼 잘렸다. 불필요한 아집을 고집하다가는 자신도 화를 입을 수 있다. ‘진짜’ NDC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업을 옥죄는 것이 아니다. 현실성 있는 목표를 다시 수립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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