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수능 수석 발표를 다시 생각한다

입력 2021-12-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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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교수

올해 수능은 ‘불수능’이라고 불렸던 2017학년도 수능보다도 더 어려웠다고 한다. 이처럼 어려운 수능시험에서도 또 한 명의 만점자가 나와 화제를 낳았다. 만점을 받은 여학생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비결을 소개했다. 어려운 시험에서, 그리고 대학을 다니다 짧은 수험 기간 동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만든 수능 전국 수석 학생에게 박수를 보낸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학 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오랜 기간 고민하며 진로를 재설정해 수능에 도전한 학생의 각오를 알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과정을 슬기롭게 해내 좋은 성과를 거둔 점은 대견한 일이다.

다만, 수능 수석 발표가 과연 필요한 일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 1970~1990년대에는 대입 시험의 난이도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고 주요 대학의 커트라인, 경쟁률이 TV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다. 학력고사 전국수석, 수능 전국수석, 본고사 수석이 연일 뉴스를 도배했고 수석 합격자의 인터뷰가 줄지어 소개되었다.

미국 및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 입시철에 대입시험 최고 점수 합격자나 수석 합격자의 인터뷰가 주요 언론에 소개되는 경우는 없다. 수석 합격자의 노력을 저평가해서가 아니라 거의 모든 수험생이 1~2점 차로 줄지어 있고 대학 입학 전에 수석, 차석 등의 고리타분한 부담을 어린 수험생들에게 주는 것이 좋지 않다는 연구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모여 시험을 보고 1등에서 꼴찌까지 성적으로 줄 세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 폐해를 낳았는지 경험해 왔다. 교육자로서 경험해 보면 대기만성의 인재도 있기에 20세 미만의 전국 수험생들을 모두 줄 세워 그들의 잠재력을 너무 쉽게 낙인 찍는 건 아닌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스콧 페이지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치르는 표준화된 시험(미국 수능이라 불리는 SAT 등)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 학업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주장해 왔다. 시험에서 특정 점수를 넘어선 학생은 실력이 거의 비슷하기에 이 중에서 1등, 2등을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국내 한 교육전문 매체에서는 수능시험이 시작된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역대 만점자가 232명이고, 이들이 어떤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는지를 단독 기사로 보도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수능시험에서 만점이든 수석이든 그 영예를 차지한 학생을 격려하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요란스럽게 이들의 진로를 확인하는 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는 기술과 콘텐츠가 융합되는 융복합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인재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적으로 줄을 세워 모든 수험생의 역량을 단정하는 교육 방식과 기준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한동안 수능 수석 등의 보도가 자취를 감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학 입학을 위한 전형이 워낙 다양화되었기 때문이지, 수험생의 입장 그리고 교육적 의미와 효과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라도 수석 합격, 수능 만점 등의 순위를 중시하는 단선적 사고에서 우리 모두 벗어나야 한다.

7년 전 한 언론매체는 역대 수능 수석이 어떤 길을 밟고 있는지 살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한 인재 중 상당수가 국내에서 받은 교육보다 미국 유학 중 배운 것이 인생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수능 수석을 했던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차라리 미국으로 유학 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능 수석조차 미국에서 받은 교육이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의 주입식 교육 방식, 수석을 발표하는 관행이 필요한 일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올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은 44만8000명이 넘는다. 한 방향으로 줄을 세우기보다 이들의 잠재력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격려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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