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입력 2021-04-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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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우리는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이 공적 마스크를 일찍 시행한 덕에 이 정도지, 안 그랬으면 우리 이미 다 죽었어.”

얼마 전 문빠(문재인 대통령 극렬 지지층)로 통하는 지인들과 나눈 대화 중 일부다. 본인들은 이명박근혜의 적폐를 청산하자는 문 대통령의 정책에 공감할 뿐 문빠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과 대화해 보면 내가 시대와 불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지인들의 정권 지지 수준이 정치를 초월해 종교적 깨달음에 도달한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이들과의 대화를 복기해 보면 순서가 이렇다.

“백신이 급박하지 않다”라는, 아니 기모란 청와대 방역 기획관의 말처럼 “급하지도 않고 백신을 쓸 나라도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주장을 먼저 했다. 특히 부작용을 걱정한 문 대통령이 국민 건강과 안전을 귀하게 생각해, 오히려 백신 도입을 천천히 하는 거란 말로 ‘문비어천가’를 불렀다.

한마디로 “어린 백셩을 어엿비 여겨” 약국에서 타이레놀 사듯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백신을 문 대통령이 천천히 도입한다는 우러름이었다. 실제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두 회사(화이자·모더나)가 우리에게 오히려 빨리 계약하자고 재촉하는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백신 확보에 불리하지 않은 여건이라고 말했다.

자기 주변에 한 명, 두 명 확진자가 발생하자 문빠는 두 가지 논리를 들이밀었다. 우선 문 대통령의 K방역이 과도하게(?) 성공적이어서 역설적으로 국민들의 방역의식이 해이해졌다. ‘사람이 먼저다’에서 ‘국민이 문제다’로 프레임을 뒤집었다. 두 번째는 문 대통령이 다 확보해 놓은 백신을 미국에서 보내주지 않는다는 ‘일타이피’ 전략이다. 문 대통령을 보위함과 동시에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행보를 비판하며 반미 의식을 고취하는 셈이다.

여기에는 외교를 관장했던 전 국무총리도, 여당 대표가 되겠다는 정치인도 초록동색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미국이 백신 수출을 금지한다면) 이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라디오에 나와 말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는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백신 이기주의가 많이 생겨 제때 공급이 안 됐다”고 주장했다.

4차 대유행 우려 속에 지인들을 만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장은 ‘안 봐도 비디오’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이 이미 21일 이들을 대변해서다.

그는 “단순히 백신 접종률만 따질 것이 아니라 방역상황, 확진자 수, 사망률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21일 기준 신규 확진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4명, 영국은 2.8명, 이스라엘은 2.6명, 미국 18.5 명으로 국내 상황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강조했다. 문빠가 보기에는 문 대통령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백신 달라고 징징대는 우매한 국민이 답답할 수도 있다.

맹신을 하고 살면 본인들은 편안하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침대 광고 카피처럼 옆에서 뭐라 떠들고 뛰어도,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상식적 비판도 수용하지 않는 이들의 언행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가정사를 보면 오히려 이들의 경쟁력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투기가 망국의 근원이라면서도 강남에 조금 더 일찍 집을 못 산 것을 안타까워한 A 씨는 다른 부동산 투자로 수억 원대의 차익을 올렸다. 자기 자식 외고 보내려고 생쇼를 하면서 교육의 서열화를 비판하던 B 씨는 논란의 자사고에 애를 입학시켜 소위 SKY(서울대ㆍ고대ㆍ연대) 학부모를 기대하고 있다. 과도한 신념은 인식을 왜곡한다. 부끄러움에 눈을 감게 한다. 도덕성을 마비시킨다. 스스로는 편할지 몰라도 나라를 녹슬게 한다.

갑자기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를 쓰는 회사는 잘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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