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악마 옆에 악마가 있었다

입력 2021-01-19 06:00 수정 2021-01-1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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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사회경제부 법조팀 기자

생후 16개월의 영아가 학대 끝에 사망했다. 정인 양의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법의학자와 전문 부검의를 통해 정인 양의 사인을 재감정한 뒤 양모에게 아동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를 적용했다.

양부는 양모의 학대를 방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정인이를 향한 학대 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정인이를 죽게 하려는 고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양부의 법정형은 양모가 받을 형량의 절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형법은 방법이나 형태에 상관없이 남의 범죄 행위를 수월하게 만드는 것을 ‘방조’라고 규정한다.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하는데, 종범의 형은 범인(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정범의 형에서 절반을 줄이는 ‘방조 감경’을 하고 있다.

청소년과 아동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판매한 ‘n번방’ 사건도 방조가 키운 범죄다. ‘박사’ 조주빈, ‘부따’ 강훈, ‘갓갓’ 문형욱의 곁에는 수천 명의 방조범이 있었다. 이들이 성 착취물을 더 잘 만들 수 있게 돈을 내고, 응원하고, 환호한 그들이 존재했다.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n번방 회원 3575명이 검거됐다.

현실은 참혹하기만 하다. 조주빈이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받을 때 2000개가 넘는 성 착취물을 구매한 회원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문형욱이 만든 성 착취물 167개를 시청하고 보관한 남성에게는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됐다.

방조 범죄는 타인에게 범죄 실행을 교사하는 것과 다름없다. 묵인은 때로 지시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이거 해도 되는구나”라는 확신이 범죄를 키운다. 형법은 교사범을 범죄의 공범으로 보고 정범과 같은 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지휘나 감독을 받는 자를 교사해 범죄가 발생한 때에는 정범 형의 절반까지 가중하도록 한다.

재판을 방청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건이 자주 눈에 띈다. 음주운전 사고로 길을 건너던 청년이 숨지고, 상사의 성추행에도 그를 멈출 수 없었고, 훈계로 포장한 학대로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매일 쏟아진다.

음주 운전자의 옆에는 함께 술을 마신 친구가 있었고, 상사가 여직원의 다리로 손을 뻗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본 다수의 직원이 있었고, 아버지의 학대를 지켜만 본 엄마가 있었다. 악행을 보고 가만히 있는 것도 악행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의 죽음에는 방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식 수준이 일조했다”는 한 판사의 말처럼 주위의 적극적인 개입과 신고, 단호한 처분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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