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사람도 식물도 때맞춰 할 일이 있다

입력 2020-11-1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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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엊그제 입동이 지났습니다. 시간을 정확히 아는 듯 입동을 지난 식물원에 나무들은 가을을 장식해주던 잎마저 떨어지고 풀들은 거의 말라가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 날씨가 추워져 한가로울 것 같은 식물원은 여전히 분주합니다. 분주한 정도로 봤을 때 일 년 중 가장 바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기억력이 나쁜 탓에 지난 일을 쉽게 망각하는 저는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이 봄이 가장 바쁜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식물원은 일 년 내내 바쁘지 않은 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입동에 식물원이 바쁜 이유는 겨울을 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내년 이른 봄에 우리를 즐겁게 해줄 예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지금 심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식물원의 이른 봄을 대표해주는 화사한 튤립은 원산지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여름이 매우 건조한 곳입니다. 원산지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름이 아주 습하기 때문에 알뿌리를 그대로 땅속에 두었다가는 모두 썩어 없어집니다. 그래서 식물원에서는 봄에 꽃을 보고 난 튤립 알뿌리를 모두 캐내서 그늘에서 잘 말려두었다가 초겨울에 다시 심곤 합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마늘도 같은 원리입니다.

입동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가진 절기로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입니다. 24절기를 ‘음력’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 24절기는 지구의 공전에 따라 태양 각도가 달라지는 것을 측정해서 정해지기 때문에 ‘양력’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의 기준이 되는 양력과는 다른 양력이기 때문에 혼동하는 것뿐입니다. 입동 이후로는 태양의 복사량이 점점 줄어들어 날씨가 점점 추워지게 되기 때문에 온대 지방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사람들 삶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납니다. 매년 이맘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을 테고 그것이 누적되어 전통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동 즈음에 꼭 해야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많은 것 중에 식물과 관련된 것만 살펴봐도 재미있습니다.

입동에 가장 먼저 해온 일은 김장입니다. 입동을 전후해 5일 내외에 담근 김치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합니다. 김치를 시원하고 맛있게 해주는 것은 젖산균의 활동 때문인데,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 류코노스톡균이 있는데, 이 균은 5~7℃에서 가장 많이 생성된다고 합니다. 며칠 전 기상청이 발표한 1973년부터 2019년까지 47년간의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입동의 평균 최저기온은 5.5로 정확히 김치가 맛있어지는 온도입니다.

이 시기에는 고사도 지냈는데 안전한 농사를 기원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시루떡과 약간의 음식을 준비해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이나 외양간 등에서 고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고사를 지낸 후에는 고사 음식을 농사철에 고생한 소에게 주고 이웃 간에도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한 해 농사를 안전하게 잘 마무리한 것을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때 시루떡은 팥시루떡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팥에는 인과 칼슘이 풍부해 진통과 해열에 효과가 좋고 이뇨 작용을 도와주어 부종 제거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농사에 지친 몸을 보호해주는 과학적인 의미가 담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식물 관련해서 ‘입동 전 보리 씨에 흙먼지만 날려주소’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보리 파종의 시기에 대한 속담으로, 앞에서 예로 든 튤립이나 마늘처럼 보리도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파종해야 합니다. 늦어도 입동까지는 끝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속담입니다. 이즈음에 식물원이 바쁘듯 농가에서도 월동준비로 아주 바쁠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보리 파종을 놓쳐서는 안 되고 흙먼지만 날리는 수준이라도 파종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좋은 아빠가 되어보겠다고 아이 손을 잡고 주말농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동 바로 전 절기로 서리가 내린다는 의미의 ‘상강’이 있습니다. 상강 전에 고추를 모두 수확하고 고추 농사를 끝내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해에는 상강이 주중에 들어있었습니다. 상강 전주 주말에 밭에 가서는 다른 일로 바빠 고추를 수확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상강을 지난 바로 그 주말에 다시 밭에 갔을 때는 전주까지 싱싱했던 고추가 모조리 상해버려 아이가 크게 실망했던 눈빛이 떠오릅니다.

우리 삶에서도 바로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많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추석에 못 뵌 어머님을 이번 주말에는 찾아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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