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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베르테르' 카이 "다락방에 묵혀둔 사랑의 사진들 꺼냈죠"

입력 2020-09-24 07:00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베르테르 역을 맡은 배우 카이.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베르테르'에서 베르테르 역을 맡은 배우 카이. (사진제공=EMK엔터테인먼트)
"머릿속에 저장돼 있어서 잊고 지냈던 사랑의 희로애락을 꺼내봤어요. 다락방의 한 상자 안에 묵혀뒀던 먼지 수북한 사진들을 보다 보니 사실 좀 힘들더라고요."

뮤지컬 '엑스칼리버', '프랑켄슈타인', '벤허' 등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선보였던 배우 카이 입에서 나온 '힘들다'라는 말은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물리적인 힘듦이 아니었다. 잊고 지내온 페이지들을 꺼내다가 사랑의 여운·폭풍이 몰아친 까닭이다.

특히 수묵화같이 여백의 미가 큰 작품에 자신의 순수한 감정을 가미해야 한다는 생각은 카이에게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것은 카이가 뮤지컬 '베르테르'를 만나 겪은 소용돌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카페에서 카이를 만났다.

카이는 '베르테르'를 하면서 퇴근길(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을 일컫는 말)이 이전보다 더욱 고되다. 그는 "집에 가는 길이 제일 힘든 작품"이라며 "머리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 느낌으로 집에 온다"고 말했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2000년 초연한 한국 창작 뮤지컬로, 검증받은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카이가 '베르테르'를 택했다는 소식은 뮤지컬 팬들에겐 희소식이었다. 순수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을 가진 베르테르를 카이가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다.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정말 좋은 것도 맞습니다. 제가 현실에서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좋은 느낌이 20대의 감정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끼는 순수함이 베르테르의 그것과 같은 것인지도 생각했죠."

막노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개성이 강한 작품에 줄곧 출연해오면서 되려 '익숙함'을 느꼈던 그는 '베르테르'에서 불이 갑자기 켜져 버리자 발가벗겨진 느낌마저 들었다고 했다. 도전이라는 말보다 생소함 가운데 기쁨이 더 적합한 표현이었다.

베르테르 역을 맡은 이에게 요구되는 것은 연기력이다. 카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 절망 그리고 희망을 오가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약해 보이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베르테르의 복잡한 내면을 그려내야 한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자칫 알베르트와 결혼한 롯데를 향해 집착을 보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20년 동안 검증이 돼온 작품이고 지금까지 너무 훌륭한 배우들이 맡아주셨어요. 완성도를 채우는 건 무조건 배우의 힘이라고 생각해서 책임감이 느껴졌죠. 감정의 공기로 관객들을 흡입시켜주려면 제 역량이 중요하겠죠."

카이가 생각한 베르테르의 죽음은 롯데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약해서 죽은 것이 아닌 강해서 죽음을 택한 것이고, 그게 베르테르의 최고의 용기였다는 판단 때문이다.

"마지막에 해바라기가 쓰러지기도 하고, 하나만 남기도 하죠. 베르테르의 죽음이 끝이 아닌 가장 고결한 희생의 서막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연출님의 의도였던 것 같아요. 제 마음도 그렇고요. 조광화 연출께서 커튼콜 하러 나올 때 아주 기쁜 웃음을 지어달라고 배우들한테 말씀해주셨다."

카이는 '베르테르'를 통해 음악의 힘을 느낀다. 원작 소설은 형용적인 표현도 고전스럽고 문학적이어서 어렵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음악 안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르테르'의 음악은 트렌디와는 먼 옛날 음악이에요. 20년 전과 다르게 편곡도 됐고 고전적인 느낌도 많이 사라지면서 세련돼졌지만, 프랭크 와일드혼, 르베이와는 다른 예스러움이 있잖아요. 근데 저는 그게 좋아요. 베르테르의 감성과 잘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일인칭 시점으로 가는 소설보다 뮤지컬은 관계성 중심이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으로 봐야 해서 아쉬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카이는 '베르테르'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으로 '2막 2장'을 꼽았다. 결혼한 롯데를 만나러 가지만 알베르트와 셋이서 조우하는 장면이다. 여기엔 실제 경험담도 투영됐다.

"옛 애인이 저보다 잘난 사람이랑 만나는 걸 보잖아요. 그럼 정말 기분 별로예요.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죠. 자괴감도 자격지심도 생기고 화도 나다가 다시 매달려볼까 생각도 들면서 오만 생각이 다 들거든요. 질투라기보단 제 삶에서 가장 숭고하다는 가치를 흐트러트리는 어떤 것들을 봤을 때의 감정인 것 같아요. 그게 아쉽게도 남녀 간의 사랑인 거고요. 이걸 표현하는 게 절대 쉽지가 않아요."

▲롯데 역의 이지혜와 베르테르 역의 카이의 모습. (사진제공=CJ ENM)
▲롯데 역의 이지혜와 베르테르 역의 카이의 모습. (사진제공=CJ ENM)

카이는 흥행과 투자 여부로 멜로 영화가 드문 오늘날 뮤지컬이 로맨스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출연료가 삭감되고 제작비가 줄어들고 있으며 대관이 엎어진 작품이 늘어나는 '대혼돈의 시기' 속에서 고마움이 배가되고 있다.

"한두 달 지속될 거 같지 않은 상황 속에서 배우들도 불안하기 짝이 없어요. 쇼 뮤지컬은 관객이 함께 뛰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더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흥행이 되지 않는 예술산업시대에 저희 작품을 보러 와주는 따스한 마음과 순수한 열정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19가 불거진 2~3월에 배우로서 위기감을 느낀 그는 유튜브 '카이클래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아는 주제로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은 주제는 클래식이었다. PD와 단둘이 꾸려나가는 유튜브를 위해 섭외도 직접 하고 있다. 처음엔 거절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이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 마인드를 갖고 있고 제 일을 사랑하면서 꾸준히 해온 사람들을 동경해요.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죽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시청률을 위해 유명한 뮤지컬배우 위주로 출연시키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구독자 수를 늘리는 것보다 본질을 가꾸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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