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입력 2020-07-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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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 회장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다. 이 프라하의 봄에 참여한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영화로 만들어진 게 ‘프라하의 봄’이다.

‘인간의 삶이란 오직 한 번만 있는 것이며,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라고 쿤데라는 이야기한다. 영원성이 무거움이라면 이 일회성은 가벼움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라하에 나타난 여주인공 테레자의 손에 들린 책은 안나 카레리나였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난 날, 그 기차역에서 한 남자가 기차에 치여 죽는다. 소설의 마지막, 안나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지나치게 극적인 이 구성이 사실은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이라고 테레자는 생각한다. 시골로 낙향했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두 주인공은 결국 교통사고로 모두 목숨을 잃는다.

1989년, 영화 ‘프라하의 봄’을 시사회장에서 처음 보고 먹먹한 심정으로 하염없이 충무로 길을 걸어갔던 기억이 요 며칠 새롭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직 한 번뿐인 자신의 삶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순간에 처했기 때문이리라. ‘죄송하고, 감사드리고, 미안하다. 모두 안녕’이라는 취지의 그의 짧은 유서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라는 밀란 쿤데라의 글이 떠올랐다.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 수많은 사람이 그와의 의미 있는 인연에 슬퍼하고, 그가 쌓은 평생의 업적이 새롭게 드러날 만큼 우리 사회에 그가 많은 영향을 끼친 점만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무게다. 하지만 그는 자기 평생의 삶에 대한 평가를 송두리째 바꿔버릴지도 모를 마지막 선택을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무겁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책임감이다.

책임감이란 맡아서 책임져야 할 임무나 의무를 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그는 사회 활동가의 대부였으며 천만 시민을 책임져야 할 서울시장이었으며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쌍방이 존재해야 해결 가능한 이번 사건에서, 어린 여성 혼자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남겨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마지막 선택을 보면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가족에게 빚만 남기고 가면서까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던 그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였다는 것을. 맞지 않는 방향의 길을 걸어온 결과가 이렇게 비극적이라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업가의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덕목도 책임감이라고 본다. 책임을 진다는 건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이고 계속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투자개발 회사의 대표이자 13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게리 켈러는 그의 책 '원씽'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씽’을 찾아 집중하고 파고들라고 제안하는데, 현실에서 생기는 일들에 대해, 피해자의 태도와 책임감 있는 태도로 나눠서 책임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이다. 책임감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계획만 하고 있을 때 결과를 만든다. 행위가 결과를 만들고, 결과는 다시 행위에 영향을 끼친다는 순환의 법칙을 알면 책임감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현실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책임을 지기 위해 해결책을 찾고 계속해 나아가는 순환이 오래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 책임의 순환을 선택하고 습관화하면 어떤 어려움을 겪든 자동으로 그런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매달 직원의 월급을 제때 주기 위해, 계약한 거래처에 차질없이 물품을 납품하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우리 사회의 경제적 건전성은 이렇게 매일 기업 활동의 책임을 다하는 노력이 축적돼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책임을 다하고 싶어도 길이 막혀있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지금은 한 기업가 개개인의 문제 해결 의지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거대한 팬데믹의 위기 시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절대 파산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기업가들이 위기나 회생 단계를 헤쳐나갈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고 절대적 절망의 순간에 처하는 건 한순간이다.

지난 7월 8일 국회에서 가진 ‘칠전팔기 재도전 지원법 제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코로나 파산이 폭풍전야라는 발표가 있었다. 5월 기준,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대출액이 같은 달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이고 통계 작성 이후 증가 규모가 가장 컸다. 코로나19가 올해 안에 안 끝나면 국내 기업 절반이 이자를 못 갚는 사태가 발생하며 중소 제조업의 자금 사정은 금융 위기 이후 최저치를 재경신하고 있다고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온 기업가들이 더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의 길로 내몰리지 않도록,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부는 고민할 순 없겠는가.

이 위중한 시기에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않고 떠난 한 사람의 행적이 역설적으로 반면교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는 마지막 책임을 다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고통 속에 혼자 남겨진 여성의 눈물이 거두어질 수 있다는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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