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선배 조영래와 만나, 당신은….

입력 2020-07-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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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꽃들 정치경제부 기자

그의 병명은 ‘시대암’. 여성인권 신장에 앞장섰던 고 조영래 변호사가 1990년 43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 앞에 붙여진 고허(高虛)한 병명이다. 올해 서거 30주기가 된 조 변호사의 영정 앞에 민주화 시대를 추동한 무거운 짐이 느껴진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조 변호사의 후배 인권 변호사였다. 박 전 시장은 조영래 변호사의 대표적 사건 ‘부천 성고문 사건’의 공동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박 전 시장은 조 변호사를 회고하며 “때 이른 죽음을 아쉬워하던 모든 분이 내린 조 변호사의 병명이 ‘시대암’이었던 것에 동의한다”며 “조 변호사의 깊은 인류애에 대한 여전한 그리움을 전한다”고 한 바 있다. 박 전 시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혼자 묵상을 할 때면 스승이자 선배인 조영래 변호사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부천 성고문 사건과 여성 조기정년 철폐 사건 등을 맡으며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인권을 옹호하는 조 변호사를 통해 열정과 포용력 등을 배웠다”며 “지금도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와 부딪힐 때마다 ‘조영래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끝내 숨진 채로 발견됨에 따라 전직 서울시청 직원이 성추행 혐의로 박 시장을 고소한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로이터통신은 박 전 서울시장 관련 비보에 ‘성 학대 혐의 한국 수도 서울시장 장례식’이라고 간결하게 이름 붙였다. 수사도 필요 없다. 누군가는 뼈저리게도 수치스러워야 할 마지막 타이틀이다.

‘모두 안녕’이란 너무나도 짧은 말 뒤에 숨어 피해자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세상을 스스로 등진 그는 선배 조영래와 만날 테다. 망인이 돼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다 한들, 그의 혐의는 씻길 수 없다. 당신은 무슨 낯으로 그를 보려고 죗값을 받지 않고 모두를 등졌나. 떳떳지 못한 4년의 성추행 의혹만을 남기고 그는 허망하게 죽음을 쫓았다. 선배 조 변호사는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라는 자신의 명언을 기어코 박원순 전 시장에게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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