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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칼럼] 장내 미생물 외우기

입력 2020-05-24 17:22 수정 2020-05-25 09:45

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사람마다 서로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뚱뚱하고 어떤 사람은 가냘프며, 어떤 이는 위장이 튼튼하여 무엇이나 소화를 잘 시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당연히 암 등 치명적인 질병에 걸릴 확률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치료하는 방법도 서로 달라야 더 효과적이란 정도는 알고 있지만 막상 인간의 체질을 어떻게 분류하느냐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 문제를 나름대로 정립하여 동양의학에서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도출한 사람이 19세기 조선 사람인 이제마(李濟馬, 1837~1900)로, 소위 인간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제마는 인간의 선천적인 체질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하여, 각각 그 체질에 따라 병의 증세를 살피고 동일한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약을 달리 써야 한다는 사상의학을 개척했다. 소위 인간의 체질에 따라 맞춤형 치료의 길을 열어놓았는데 이제마의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하다. 각자의 체질에 알맞은 식생활 유지가 질병 치료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체질에는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 네 가지가 있다. 인간의 체질을 음과 양의 둘로 우선 나누고 이를 다시 크고 작은 것으로 나눈 것이다. 이제마가 인간의 체질을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눈 근거는 인체의 내장이 가진 특징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는 허파가 크고 간이 작은 사람은 태양인, 거꾸로 간이 크고 허파가 작으면 태음인으로 분류했다. 또 소양인은 지라가 크고 콩팥이 작지만 소음인은 정반대다. 여기에 등장하는 허파(肺), 간(肝), 지라(脾), 콩팥(腎)은 동양의 전통적인 ‘오장(五臟)’ 가운데 넷을 가리키며 나머지는 심장(心)이다. 이제마는 이 가운데 심장은 태극(太極)에 해당하므로 제외하고 나머지 넷을 가지고 체질을 분류한 것이다.

이제마는 한 개 군(郡)의 인구를 1만 명이라 한다면 그 가운데 태양인은 3~4명에서 10여 명, 태음인은 5000명, 소양인은 3000명, 소음인이 2000명 정도라고 했다. 이 통계의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태양인이 극소수이므로 인간을 세 가지 체질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질병과 치료에 관한 좁은 의미에서의 의학이 아니라 넓은 뜻에서 인간의 건강 문제를 생각하게 해주는 전통 사상의 독특한 관점을 피력한 것이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 의학계에서 매우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유럽분자생물학연구소 페어 보르크 박사는 인간의 침, 피부, 대변 등의 표본을 채취해 박테리아의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몸 안에서 지배적으로 발견되는 박테리아의 종류는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 프레보텔라(Prevotella), 루미노코쿠스(Ruminococcus) 등 3종류라고 밝혔다. 이들이 3가지 유형의 ‘지배적 박테리아’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는데 나이, 성별은 물론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없다.

박테리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인간의 몸에는 인간의 세포 수와 거의 비슷한 약 60조~100조 마리의 박테리아, 즉 세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놀랄 것이다. 몸 속에 1500여 종류가 넘는 수많은 박테리아들이 있다고 알려지는데, 이 중 99%는 장에 거주하면서 대부분이 좋은 역할을 한다.

박테로이데스는 가장 잘 알려진 장 박테리아 가족으로 최대 조직을 자랑한다.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능력이 좋아 인간이 무엇을 먹든 필요에 따라 모든 소화효소를 척척 만들 수 있다. ‘비오틴’으로 비타민B7 혹은 비타민H라고도 부르는데, 인간이 비타민H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장 박테리아가 이를 만들어준다. 비오틴이 부족하면 우울증, 졸음, 감염, 신경질환 등이 생기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올라간다. 오랫동안 항생제를 복용한 사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 소장을 잘라낸 사람, 투석 치료를받는 사람 등은 비오틴 결핍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프레보텔라는 ‘티아민(비타민B1)’을 특히 많이 생성한다. 티아민은 피로회복 비타민이라고 불릴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 등을 막아주는 비타민이다. 루미노코쿠스는 식물성 세포를 주로 먹는데, 피를 생산할 때 필요한 헤모글로빈을 만든다. 포도당을 잘 흡수하므로 살이 찔 확률이 높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루미노코쿠스가 많은 체질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이 이들 발견에 주목하는 것은 앞으로 ‘체내 박테리아’라는 새 분류 기준으로 사람의 체질을 구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박테리아의 성질을 이용한 체질 분류로 맞춤형 약물·신종 항생제 연구 등 의학계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한 예로 비만 유발 박테리아와 억제 박테리아가 적절하게 인체에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면, 또는 비만 유발 박테리아를 조절할 수 있다면 마음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수 있다. 마른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채취해 뚱뚱한 사람에게 이식한다면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체중을 감량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말은 박테리아 형에 따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인간을 괴롭힌 대부분의 질병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발전한다. 장기이식을 하거나 수혈을 하기 전에 혈액형을 체크하듯, 각종 질병을 치료하기에 앞서 ‘박테리아 형(型)’부터 검사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약물을 투여할 수도 있다. 앞으로 자신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알아두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박테리아 형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한다.

참고문헌 :

『한국인의 과학정신』, 박성래, 평민사, 1998

『매력적인 장 여행』, 기울리아 앤더스, 와이즈배리, 2014

「박테리아형 따라 병 치료하는 시대 올 것」, 김신영, 조선일보, 2011.04.22

「몸 속 박테리아 따라 ‘3종류 체질’ 나뉜다」, 김신영, 조선일보, 2011.04.22

「창자 속 세균 살피면 체질 보인다」, 코메디닷컴, 2011.04.23

「[조현욱의 과학 산책] 비만 유발 박테리아」, 조현욱, 중앙일보, 20110426

「혈액형은 구식, 이제 박테리아로 체질 분류해」, 김희정, 과학향기, 2011.05.23.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이 내 체질 결정한대요」, 박태진, 조선일보, 2016.07.03.

「현대병의 진짜 원인은 장내 미생물」, 심재율, 사이언스타임스, 2016.12.15.

「장내 미생물이 당신을 지배한다」, 심재율, 사이언스타임스, 2017.08.03.

「장내세균이 ‘건강 나이’ 결정」, 이강봉, 사이언스타임스, 2018.01.14.

「장내미생물 세계의 ‘이이제이 이론’」, 강석기, 사이언스타임스, 2018.11.09.

「장내유익균, 정신건강과 연관 있다?」, 강석기, 사이언스타임스,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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