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정월 대보름 (2)

입력 2019-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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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우물가로 간 우리들은 찬물로 세수를 한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어머님께서는 헛솥에 물을 데워 더운물로 세수를 하게 하였지만, 대보름날 아침부터는 여지없이 찬물로 세수를 하게 하셨다. 완연한 봄이 됐으니 이제 더운물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더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를 단련시킨 것이다. 처음엔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시린 손을 비비며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면 기분이 참으로 상쾌했다. 그때 느꼈던 그 청량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수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면 어머니께서는 어느새 갖가지 나물과 오곡밥을 차려 조상님께 차례를 올릴 준비를 마치셨다. 차례를 지내고 밥상에 둘러앉으면 어머니께서는 김 한 장에 오곡밥을 싸서 나누어주며 ‘노적’을 먹으라고 하셨다. 노적은 ‘露積(드러낼 노, 쌓을 적)’이라고 쓰며 노지에 탈곡하지 않은 곡식 따위를 한데에 수북이 쌓은 것을 이르는 말이다. 김 한 장으로 통째로 싼 김밥을 ‘노적’이라고 부르며 먹은 것은 노적을 높이 쌓을 만큼 풍년이 들고 식구들 모두에게 재운이 들어서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원에 다름이 아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은 더위를 팔러 밖으로 나갔다. 이날은 남이 나를 부르면 절대 “네” 혹은 “응”이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 잽싸게 내가 먼저 “네 더위”라고 외침으로써 올여름에 내게 밀려올 더위를 남에게 팔아넘겼다. 깔깔대며 이렇게 쏘다니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께서는 또 오곡밥을 주셨다. 이날은 밥을 아홉 번 먹고 땔나무를 아홉 짐 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새봄을 맞아 농사일을 시작하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했으므로 이처럼 많이 먹게 하고, 그렇게 많이 먹은 것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 산에 가서 땔나무를 아홉 짐이나 해오게 하는 운동을 시키는 풍습을 만들어 온 것 같다. 긴 겨울잠에서 깨어 새봄을 맞아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의식을 정월 대보름날 치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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