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인사이드] 신기루 좇는 미국 대선

입력 2016-10-13 10:58 수정 2016-10-18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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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막장 드라마 같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2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세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쪽으로 완연히 기운 분위기다. 클린턴 후보는 몸조심에 들어갔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막판 뒤집기를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선거운동 양상만 봐도 이런 판세를 읽을 수 있다.

진흙탕 싸움에 신물이 난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도 트럼프 후보 진영에서는 ‘권력의 비리’라는 카드로 역전을 노리는 움직임이 확연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10% 포인트 정도 차이가 나더라도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투표처럼 뒤바뀐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도 버리지 않고 있다.

클린턴 후보 진영에서도 혹시나 2000년 대선과 같은 상황이 재현될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느 모로 보나 앞섰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어이없이 패배한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클린턴 후보가 고어 후보처럼 된다(Clinton Gets Gored)’는 내용의 기사가 여러 언론 매체에서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진작 탈락할 것 같았던 트럼프 후보가 치열한 공화당 후보 경선을 거뜬히 통과하고 클린턴 후보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이자 트럼프 후보 지지자들의 콘크리트 같은 충성도에 선거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여러 부류의 지지층 가운데 핵심 세력은 고임금을 누렸던 제조업 근로자들이란 사실이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과 멕시코 등에 빼앗긴 제조업 일자리를 찾아오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후보를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는 한 지지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공약한 대로 보호무역 정책을 실행하더라도 제조업 일자리는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고 다른 부문의 주름살만 깊어지게 된다고 단언했다. 한마디로 신기루를 좇고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제조업 인력의 비중이 1950년 비농업 인구의 24%를 정점으로 현재 8.5% 수준까지 떨어진 것은 산업구조 변화 때문이지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실례로 월마트나 월그린 같은 미국의 주요 유통업체들이 미국산(Made in USA) 구매전략을 강화하자 전동칫솔헤드 메이커인 라니어(Ranir)와 자전거 메이커인 BCA가 중국 공장의 생산 물량을 줄이는 대신 미국 내 생산을 재개했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다. 일산 1만3000개 규모의 전동칫솔헤드 공장에는 기껏 4명이 고용됐고 연산 30만 대 규모의 자전거 공장에는 예전의 3분의 2 수준인 115명이 일을 하게 됐다. 생산공정 자동화로 작업이 단순해지면서 임금마저 낮아지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 버렸다.

세계 최대 농업국인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등에 힘입어 농산물 생산과 수출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20세 초 전체 인구의 41%였던 농업인구가 지금은 2% 수준으로 급락한 사실에서도 생산과 고용의 연관성이 현저히 떨어진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미국 대선은 신기루를 좇는 지지층과, 신기루인 줄 잘 알면서도 이를 부추기는 후보와 신기루라고 말 못하고 영합하는 후보가 뒤엉킨 최악의 선거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글로벌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의 고용인력 감소 추세는 베트남과 같이 해외투자가 집중되고 있는 일부 개도국을 제외하면 세계적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제조업 왕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후발주자인 인도까지도 제조업 고용 위축을 걱정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거센 구조조정에다 파업의 태풍까지 겹친 우리 제조업의 운명을 정작 태풍의 눈 속에 있는 우리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1년여 남은 우리의 대선에서도 심각한 실업 사태를 놓고 책임 공방을 벌이면서 신기루 같은 공약이 난무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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