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의 골프이야기]‘(박)인비천하’가 국민에게 선사한 ‘힐링 금메달’

입력 2016-08-21 15:01 수정 2016-08-2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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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의 금메달, ‘한국골프발전, 박세리처럼 50년은 앞당길 것’...‘인비키즈’ 양산

▲왼쪽부터 리디아 고(은메달), 박인비(금메달), 펑샨샨(동메달). 사진=LPGA
▲왼쪽부터 리디아 고(은메달), 박인비(금메달), 펑샨샨(동메달). 사진=LPGA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골프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박인비가 116년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 여자부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메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 ‘키즈’로 골프를 시작해 올림픽 기간동안 감독 박세리와 한솥밥을 먹으면서 귀중한 메달을 한국에 안겼다. 또한 스포츠가 가진 ‘힐링’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선사했다. 특히 침체에 빠져 있는 한국 골프계의 구원투수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 ‘인비 키즈’를 양산하며 한국골프계의 발전을 50년 정도는 앞당기지 않을까 싶다. 박세리가 그랬던 것 처럼.

전세계 골프팬들과 한국의 골퍼들은 박인비의 우승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금메달 한개 추가도 한국으로써는 저알 중요하다. 하지만 골프계 입장에서는 메달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1998년 IMF 경제위기에 시름을 앓고 있을 때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맨발신화’를 이루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었다. 아마도 골퍼들은 그때를 떠 올렸을는지도 모른다.

#1998년 US여자오픈 최종일. 본선에서 박세리는 듀크대 2년생 태국의 제니 추아시리폰과 동타를 이뤘다. 7월7일 오전 1시(한국시간)에 18홀 연장전이 시작됐다. 박세리는 초반에 4타까지 뒤졌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날 맨발의 투혼은 미국 위스콘신주 쾰러의 블랙울프런 컨트리클럽 18번홀(파4)에서 이뤄졌다. 박세리의 티샷이 드로가 심하게 걸리면서 왼쪽 연못 턱으로 볼이 날아갔다. 발을 디딜 곳은 연못 속 밖에 없었다. 박세리는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망설임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매일 그린에서 사느라 얼굴과 팔은 검게 타 있었지만 발은 백옥처럼 하얗고 투명했다. 그리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볼을 페어웨이 한 가운데로 레이업했고, 3온, 2퍼트로 보기. 이에 놀란 추아시리폰도 파 퍼트가 홀을 벗어나 둘은 서든데스에 들어갔다. 박세리는 두 번째 서든데스홀인 11번홀에서 5.5m 버디퍼팅에 성공하며 5일간 92홀 지루한 레이스를 마감했다.

▲왼쪽부터 최종일 챔피언조를 이룬 박인비, 리디아 고, 저리나 필러. 사진=LPGA
▲왼쪽부터 최종일 챔피언조를 이룬 박인비, 리디아 고, 저리나 필러. 사진=LPGA
#박인비의 금메달 획득은 자신의 영광이자 ‘가문의 영광’일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골프를 잘 모르는 사람도 올림픽은 본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 3사는 한국의 레전드 여자프로골퍼에게 해설을 맡겼다. SBS는 김영, KBS는 김미현, MBC는 서아람과 최나연을 등장시켜 밤새워 중계방송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각각의 해설자들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선수들의 기량뿐 아니라 개인사까지 틈틈이 이야기를 들려줘 골프방송의 재미를 더했다.

사실 박인비는 올림픽 출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허리부상에다 왼손가락 인대손상이라는 최악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확정되고 나서 올해 연초까지만 하더라도 세계골프랭킹 1위였고, 커리어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의 금메달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부상의 골은 깊었다. 지난 6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고 나서 메이저대회 KPMG 위민스 PGA 챔피업십에서 컷오프 됐다. 그리고 7월 US여자오픈과 브리티시여자오픈 등 메이저 대회를 포기했다. 다만, 대회에 출전하는 대신에 올림픽 프로젝트에 맞춰 연습과 골프장에서의 라운드는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박인비가 올림픽 출전권을 포기할 것‘이라고 성급하게 전망했다. 시즌 우승 없이 기량도 바닥을 찍은데다 브라질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 남자 세계랭커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박인비에게도 불참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인비를 괴롭힌 것은 ‘출전해도 메달 가능성이 없으니 잘 나가는 후배들에게 양보하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부상을 털어낸다 하더라도 올 시즌 부진했던 성적을 감안하면 한달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지난해 평균 타수 69.42타(1위)에서 올해는 72.19타(79위)로 떨어졌다. 올림픽을 앞두도 실전 샷을 하러 출전한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보기 좋게 컷오프되자 불참에 힘이 실렸다.

박인비는 귀를 막았다. 남의 눈치를 볼 상황이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7월 11일에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림픽 출전은 자신의 오랜 꿈이자 목표였기 때문이다. 부상 회복 경과를 두고 깊이 고민해왔으나 상당히 호전됐다고도 했다.

▲박인비. 사진=LPGA
▲박인비. 사진=LPGA
#그런데 막상 올림픽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박인비는 변해 있었다.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손가락탓으로 제대로 안된 스윙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전의 스윙이 돌아 왔고, 볼을 때리는 파워가 되살아난 것이다. 억세게 운좋게도 연습라운드에서 ’3년간 재수가 좋다‘는 홀인원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신(神)의 행운도 점지 받았다.

1900년 파리 대회 이후 116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가 열리는 첫날 박인비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샷에 무서운 힘이 실렸다. 시즌 내내 말을 듣지 않던 퍼팅도 순조로웠다. 우승을 만들어 주느라 롱퍼트도 슬금슬금 잘 들어갔다. 4라운드 합계 16언더파 268타(66-66-70-66)로 세계여자골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9·캘러웨이)를 무려 5타차로 제치고 완승했다. 리디아 고는 박인비에게 진심이야 어떻든 “저는 다음 기회가 있으니 보다 많이 버디를 잡아서 금메달을 꼭 따라”고 말했다고 한다.

메이저대회 7승을 포함해 LPGA 투어 17승의 박인비의 기량이 어디 가겠는가.

첫날만 1타 차 2위에 올랐을 뿐 2라운드부터 내내 단독 선두를 오르며 ‘인비천하(天下)’의 세상을 만들었다.

박인비의 이번 우승은 그의 지혜로운 두뇌에서 나왔다. 함께 플레이했던 선수들보다 늘 거리가 덜 나갔다. 그러나 박인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다음 샷을 위해 최적의 페어웨이 랜링존을 찾아서 플레이했다. 벙커와 워터해저드 방향은 보지도 않았다. 절대로 피했다. 박인비는 링크스의 까다로움과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드라이버와 우드로 볼을 보낼 만큼 보낸 뒤 그린주변에서 자신의 강점인 쇼트게임과 퍼팅에 모든 것을 걸었다. 머리 좋은 박인비가 세운 코스 매니지먼트의 완벽한 승리였던 셈이다.

2020년 동경올림픽 골프에서는 한국의 누가 금메달을 손에 쥘는지 궁금하다.

▲올림픽 골프코스. 사진=PGA
▲올림픽 골프코스. 사진=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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