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7월 4일 주세페 가리발디-이탈리아 통일에 목숨 바친 영원한 전사

입력 2016-07-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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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미래설계연구원 연구위원

“무엇보다 그가 염원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민족 통일, 즉 이탈리아의 민족 통일이었다. 그에게 이것은 종교이자 신앙이었다.” 주세페 가리발디(1807.7.4~1882.6.2)에 대해 구학서 강원 원주대 사학과 교수가 저서 ‘이야기 세계사’에서 설명한 부분이다. 사실 그만큼 이탈리아 민족국가의 출범에 목말랐던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염원으로 결국 이탈리아 통일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미천한 뱃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가리발디는 성인이 되자 조국 이탈리아로 가서 사르데냐왕국의 해군에 들어갔다. 정치 지도자 주세페 마치니의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는 마치니의 청년이탈리아당으로 들어가 열성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1834년 마치니의 혁명운동에 동참하다 실패하자 프랑스로 도주했다.

프랑스에 망명 중이던 그는 1836년 우루과이 혁명전쟁에 참가했다. 그리고 1848년 이탈리아의 통일운동이 시작되자 의용대를 조직해 로마공화국을 도왔다. 그러나 공화정부가 패퇴하자 미국 뉴욕으로 망명했다가 1854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카프레라섬에서 은거했다.

카프레라섬에서 희망 없는 세월을 보내던 그는 통일을 위해 공화주의를 포기하고 사르데냐왕국에 의한 통일을 돕기로 했다. 그래서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방을 정복해 샤르데냐왕국에 바쳤다. 그의 이런 행동은 이탈리아 통일에 중대한 계기가 됐다.

이후 카프레라섬으로 돌아간 그는 로마 병합이 되지 않자 군인을 뽑아 로마 점령을 노렸다. 하지만 이것이 무위에 그쳐 카프레라섬에 다시 연금됐다. 1870년엔 프랑스 정치가 레옹 강베타의 모병에 응해 프랑스로 가 보르도국민의회 의원이 됐으나 프랑스인과의 관계도 나빠져 다시 카프레라섬으로 돌아와 남은 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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