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유치했던 또 하나의 고연전

입력 2015-09-2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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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지난주 고연전이 열렸다. 올해는 연세대가 주최여서 공식 명칭이 고연전이다. 결과는 2승 1무 2패. 작년에 5 대 0으로 전승했던 고려대로서는 아쉬웠을 것이고, 설욕을 다짐했던 연세대로서는 땅을 칠 일이겠지만 올해 50주년을 맞은 정기전의 승부로서는 이렇게 팽팽한 호각(互角)이 더 좋지 않을까.

나는 그 며칠 전 연세대 앞에 갔다가 길거리에 내걸린 가로 펼침막을 보고 놀랐다. 이걸 흔히 현수막이라고 말하지만, 현수막(懸垂幕)은 문자 그대로 아래로 내려뜨린 것이니 정확한 말이 아니다. 펼침막의 내용은 이런 것들이었다. ‘집 나오면 개고대생’, ‘우린 거북선 고려대는 똥통’, ‘세브란스도 못 고치는 안암’, ‘나 꿍꼬또 고대 이기는 꿍꼬또~’.

대체로 좀 저열(低劣)하고 자기 학교 응원이라기보다 상대방 비난과 저주여서 보기 싫었다. 대학생들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고려대는? 그것이 궁금해서 아는 교수에게 부탁했더니 조교를 시켜 학교 앞 펼침막 사진을 다 찍어 보내왔다.

‘요즘 누가 연~새대가리!’, ‘에미야~ 난 니가 연대라 할 때부터 맘에 안 들었다~’, ‘오빠 차 뽑았다, 연대 때리러 가!’, ‘줴훈 줴훈~연대 또 져떠 줴훈 줴훈~’, 연세대와 비슷하게 ‘나 꿍꼬또 고대 전승하는 꿍꼬또~연대 또 져또!!’도 있었다. ‘줴훈 줴훈’은 요즘 일요일 밤에 방영되는 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나오는 이름이다.

나도 대학에 다닐 때 고려대 교가를 아래와 같이 바꿔 부른 적이 있다. 괄호 안이 원래 가사다. ‘무악산 기슭에 찌그러진 집을 보라(북악산 기슭에 우뚝 솟은 집을 보라). 신촌의 언덕에 꺼져가는 빛을 보라(안암의 언덕에 퍼져나는 빛을 보라). 겨레의 역적이요 간신이 뭉쳐 드높이 쌓아 올린 멍든 탑(겨레의 정성이요 보람이 뭉쳐 드높이 쌓아 올린 공든 탑), 사기 도둑 공갈의 소굴이 있다(자유 정의 진리의 전당이 있다).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겨레의 역적(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마음의 고향), 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영원히 꺼져라(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영원히 빛난다).’

나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요즘 대학생들의 응원 문구에 실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결국 세대차이고 인생의 묘미인 것일까.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실망한 것은 응원 문구나 말투보다 협찬 문제다. 연세대의 푸른색 펼침막에는 하나같이 연세대학교 응원단과 함께 ‘참이슬 하이트진로’가 씌어 있었다. 술회사의 돈을 받아 제작한 것이다. 고려대는? 학교 앞 업소들의 돈을 받아 제작했다. 치킨집, 맥주집, 설렁탕집의 이름이 펼침막마다 씌어 있었다. 올해가 처음도 아니고 벌써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나 보다.

양교 학생들은 정기전에서 ‘친선의 노래’를 합창한다. ‘오랜 역사 빛난 전통 사학의 쌍벽이다/어둠 속에 횃불 들고 겨레 앞길 밝힐 때와/밝아오는 광장에 한데 얼려 춤출 때/언제나 그 대열에 어깨 걸고 앞장서는/우리들은 미더운 영원한 동지다/우리 오늘 만난 것이 얼마나 기쁘냐/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다음 문제다.’

노래의 맨 마지막 부분을 ‘이기고 지는 것은 맨 처음 문제다’라고 바꿔 부르곤 했지만, 정기전을 통해 양교 학생들이 우정을 키우고 기백을 기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수와 지성도 잊지 말고 함께 지키고 길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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