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자 한 봉지도 실물을 보고 사는데

입력 2015-07-0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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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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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었다. 지난달 말 현장 취재를 위해 찾은 인천 영종 하늘도시는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휑한 풍경이었다.

이곳 입주자들 중 2000여명은 수년간 건설사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왔다. 분양광고 당시 입지조건으로 언급된 영종도와 인천을 잇는 무료통행 다리, 학교, 지하철 역사 개통 등 기반시설이 실제로는 전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입주자들은 소송을 통해 “계약을 취소하겠으니 분양대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고, 대법원은 건설사들에게 “분양대금 5%를 입주자들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아직 판결을 확정받지 못한 당사자들은 지금도 지루한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취재 당일 입주자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이 돼 있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아파트 단지 근처 커피숍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면 되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했다. 커피숍은커녕 음료수 하나 구입할 수 있는 슈퍼마켓도 한참을 걸어가야 찾을 수 있었다. 어렵게 만난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자기집 드나들면서 통행료를 내야 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집이 지어지기 전에 미리 분양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선분양 제도’는 여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정책이다. 이 제도를 통해 건설사들은 거액의 공사비를 쉽게 조달할 수 있었고, 정부는 금융지원 없이 손쉽게 주택공급 정책을 펼 수 있었다. 위험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투자 목적으로 분양을 받는 이들도 미리 아파트를 구입해 놓으면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고금리 시대에 목돈을 마련해 부동산을 몇 번 사고 팔면 노후자금이 마련되던 거품은 걷혔다. 앞으로도 계속 법원이 아파트 구입자들에게 “왜 광고에 나온 조건이 실제 갖춰질지 일일이 따져보지 않고 계약했느냐”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파트 선분양 제도에 대해 “슈퍼에서 파는 과자 한 봉지도 실제 만져보고 구입하는데, 몇 억원짜리 아파트는 어떻게 지어질지도 모르고 구입한다”는 한 변호사의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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