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교통카드, 새벽 잠복까지 하며 찾아준 경찰

입력 2015-03-3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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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지난 17일 오전 5시 서울 강동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강남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김정환(35) 경장은 첫차에 올라탄 한 여성을 숨죽여 주시했다.

분명히 폐쇄회로(CC)TV에 찍힌 그 '용의자'였다. 닷새에 걸친 잠복근무가 끝나는 순간. 하지만 김 경장은 여느 때와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보통 첫차를 타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얼굴을 보기에 서로 알아본다. 이 여성도 다른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김 경장은 30여분간 버스 뒷자리에 앉아 그녀가 '버스친구'들과 헤어지길 기다린 뒤 이야기를 꺼냈다.

"경찰입니다. 버스카드 본인이 산 게 아니죠?"

순간, 이 여성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A(48.여)씨가 분실한 버스카드를 주워서 쓴 40대 환경미화원 서모씨였다.

김 경장이 버스카드를 주워간 이를 찾으러 잠복근무까지 한 것은 강력범죄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생활밀착형 범죄를 전담하고자 최근 신설된 '생활범죄수사팀' 소속이기에 어째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 경장은 지난 9일 경찰서에 찾아와 피해를 호소한 A씨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식품회사 경리인 A씨는 경기도 남양주 집에서 서울 강남구의 직장까지 매일 버스를 타고 40여㎞를 왕복하는데 지난 4일 오후 20만원이 충전된 티머니 카드를 역삼역 인근에서 잃어버렸다.

평소 티머니 회원으로 가입해 소득공제까지 받을 정도로 알뜰했던 A씨는 '경찰이 설마 이 카드를 찾아줄 수 있을까' 싶어 속만 끙끙 앓다가 닷새 만에 경찰에 도움을 청했다.

김 경장이 확인해 보니 A씨의 카드는 이미 누군가가 주워 사용하는 중이었다. 티머니는 환불이나 카드정지 서비스가 없다.

김 경장은 카드결제 명세를 근거로 지하철 개찰구와 인근 편의점을 돌면서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했다.

유력한 '용의자'가 나왔지만 김 경장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 오후 3∼4시에 퇴근하는 키 165㎝가량의 중년 여성으로, 직업은 환경미화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본인이 등장한 절반의 CCTV에서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해 넉넉지 못한 서민이란 강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김 경장은 사건을 덮을 수는 없어 테헤란로와 강남대로 주변 70개 빌딩을 하나하나 뒤져 비슷한 용모의 환경미화원을 찾았다. 13일부터는 역삼역 등지에서 출퇴근 시간 잠복까지 했다.

그는 결국 닷새 만에 A씨의 카드로 버스를 탄 서씨를 찾아냈다.

아니나 다를까, 서씨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라 환경미화원 일과 빌딩 청소를 병행하고 있었다.

처음엔 부인하던 서씨는 곧 "주웠는데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몰라 쓰게 됐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서씨가 10여일 동안 사용한 금액은 모두 3만원에 불과했고, 카드를 돌려받은 A씨는 서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서씨는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지지만 선고유예나 1만∼5만원의 벌금을 받는 데 그칠 전망이다.

김 경장은 30일 "사람들이 피부로 겪는 사건은 사실 강력범죄보다 이런 소액·생활밀착형 범죄"라면서 "서로 좋게 마무리된 것 같아 기쁘고 더 열심히 해서 경찰의 치안 서비스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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