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홀아비와 홑몸 아닌 여자

입력 2015-01-05 14:59 수정 2015-01-0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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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교열기자

새해 첫날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는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 특별전-파리, 일상의 유혹’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패션 등 프랑스 문화에 푹 빠진 작은딸은 18세기 파리 귀족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길눈이 어두운 데다 주차에 능숙하지 못한 탓에 지하철로 움직이기로 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내겐 가장 편안한 교통수단이다. 그런데 아뿔싸! 휴일 오후가 아니던가. 지하철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딸은 엄마와 함께 흥미로운 경험을 한다는 생각에 싱글벙글이다. 몇 정거장 지났을 무렵 젊은 남녀가 탔다. 남자는 연신 팔을 뻗어 사람들로부터 여자를 보호했다. 여자의 가방엔 임신부 표시 고리가 걸려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여자가 임산부 자리까지 가도록 도왔다. 하지만 그 자리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다. “홀몸이 아닌 것 같으니 양보 좀 해요!” 한 중년 여자의 말에 그녀는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남자는 아내가 몹시 힘들어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종로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홀몸’이라는 말이 목에 걸린 가시마냥 내내 불편하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아닌가. 홀몸은 배우자나 부모 형제가 없는 ‘혼자의 몸’, 즉 독신이나 척신(隻身)을 뜻하기 때문이다. 홀몸의 ‘홀’은 ‘짝이 없이 혼자뿐’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홀아비/홀어미, 홀시아버지/홀시어머니 등이 대표적 용례다.

반면 ‘아이를 가졌다’란 의미는 ‘홑몸이 아니다’라고 표현해야 올바르다. 홑몸 역시 접두사 홑에 명사 몸이 더해진 합성어다. ‘홑’은 명사 앞에 붙어 ‘한 겹’ ‘하나’ ‘혼자’ 등 한자 단(單)의 의미로 쓰인다. 홑열매, 홑바지/홑치마, 홑이불, 홑홀소리(단모음) 등이 홑이 명사에 붙어 이룬 파생어다. 따라서 아내나 남편, 부모, 형제가 없는 독신에게는 홀몸, 홑몸 모두 쓸 수 있지만 임신부에게는 반드시 ‘홑몸이 아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임산부와 임신부는 어떻게 다를까. 일상생활에서 헷갈리기 쉬운 우리말 중 하나다. 임신부는 홑몸이 아닌 여자, 즉 아이를 밴 여자를 의미한다. 임산부는 아이를 밴 여자(임부)와 아이를 갓 낳은 여자(산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아이를 밴 상태의 여자는 임신부와 임산부 모두 해당되지만 아이를 출산한 여자는 임산부다. 그렇다면 지하철 임산부 좌석의 안내그림은 수정돼야 한다. 현재 부착된 그림에는 임신한 여자만 등장해 마치 산부는 앉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만약 홑몸이 아닌 여자만을 위하는 자리라면 ‘임신부석’이라고 용어를 바꿔야 할 것이다.

아이들 덕에 18세기 첨단 유행의 도시 파리, 그것도 귀족의 저택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침대, 테이블, 유리잔, 칫솔 등 소소한 것들이 삶을 이야기해 주는 열쇠가 되며 그 속에 문명의 변천사가 녹아 있음을 깨달았다. 생활사의 묘미란 이런 것이리라. 새해 새 달력에 이날의 느낌과 더불어 작은 것의 소중함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 한해 부디 좋은 일만 많았으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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