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뒤 조직검사 예약한 날에도 엄마와 딸은 늦게 도착했다. 어디를 갔다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닐 거야”라고 엄마는 되뇌었다. 검사실로 딸을 데리고 들어가자 그제야 아무것도 아닐 거라며 담담하던 모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검사실에서 딸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조직검사를 마치고 나오자 대기실 한쪽 끝에서 엄마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고 있었다. “내가 죄인이야 내가 죄인이야.” 10여 년 전 그녀가 나한테서 조직검사 결과가 암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저렇게 가슴을 쥐어뜯으며 절망했었다. 그땐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아 가슴을 쥐어뜯었는데 이제는 그 병을 내가 딸에게 물려줬다는 생각에 또다시 같은 자리에서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질병의 원인을 죄라고 생각한 것은 인류의 오래된 사고이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고대에서는 주술과 신화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원인을 밝히려는 간절함에는 내재한 두려움이 있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병의 원인은 죄가 아닌 여러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인류의 사고는 느닷없이 튀어나와 내가 이런 병에 걸린 것은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과학이 병의 원인을 밝혔다고 해도 인간의 마음 깊숙이 있는 두려움을 잠재우기엔 신화의 힘이, 종교의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본인이 유방암이었으니 내가 딸에게 병을 물려주었다는 생각이 엄마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죄를 고백하게 했다. 그건 두려움을 넘어서는 고백이었다. 딸의 병의 모든 원인을 자기에게 돌려서라도 딸에게는 아무 해가 가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외침이었다. 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