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부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채택한 선진국들에 비해 왜 우리만 유독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우리보다 인종적 다양성이나 민주주의의 역사 등에서 갈등의 소지가 훨씬 큰 미국의 경우는 오히려 퇴임 대통령들에 대해 도서관이나 기념관을 건립해주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대외적인 사안이 생길 때 이들이 특사로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사례를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는 일명 돈 되고 명예 얻을 수 있는 ‘자리’가 많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 규모가 커서 대통령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법원장 임명, 헌법재판소 재판관 추천 등 사법부는 물론이고 집권 여당의 당직 배분과 공기업 및 공공단체장 임명 등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은 소위 분립된 3권 위에 대통령이 군림하고 있다고 볼 정도이고 이에 따라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기대 또한 큰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판 줄대기, 선거자금 제공 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간 우리 사회가 대통령에게 이러한 큰 권한을 부여한 것은 경제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 예산, 조직 등 국가의 자원 동원을 용이하게 하고 ‘일사불란’한 일 처리가 가능한 체제였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경제 면에서 기존 산업에서의 경쟁력 유지와 미래 우리 경제를 책임질 신산업 발굴, 사회적인 면에서 세대 간, 지역 간, 계층 간 격차 및 이들 간 첨예한 갈등의 해소, 그리고 획일화에 따른 유연성 상실과 혁신유인 부족 등 산적한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선진경제를 뒷받침할 하부구조로서 교육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 과제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중국이 세계시장에서 우리를 앞서 있고, 이제는 우리 내수시장까지 내주어야 할 판에 트럼프 행정부의 무차별적 관세부과와 투자 압력으로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엄청난 상황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자기 편만 싸안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들이다.
현 상황에서 새롭게 뽑을 대통령은 이러한 우리 사회에 대한 현실 인식과 추진 능력, 그리고 ‘적’과도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폭넓은 사고를 가진 ‘협상인’이 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제 위에 새롭게 뽑을 대통령은 다음 몇 가지를 임기 중 우선과제로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첫째, 현재의 대통령중심제를 개혁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으로 선거캠프에 줄 댄 사람들에게 공직을 배분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효율과 경쟁력 상실을 막도록 하는 것이다. 4년 중임제 개혁이든 이원적 집정부제이든 우리 사회의 3분의 1가량 차지하는 공적자원을 캠프에 줄 선 사람에게 배분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여 구조개혁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개혁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미래에 더 큰 고통과 비용이 발생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설득과 대화로 개혁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설득을 위해서는 그간의 행적을 통하여 국민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압축성장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루저’를 우선 돌보고 이들이 재기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경제의 압축성장만큼 빨리 다가온 초고령사회에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대 간, 지역 간 및 계층 간 불공정 인식과 갈등이 누적되어 있다. 선진사회에 필요한 개혁에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불공정 해소와 루저들에 대한 우선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