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외로 했던 중국에 대해서도 다음 날 시진핑 주석에 협상을 급제의했다.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바꿔 “시진핑은 내 친구”라며 펜타닐 관세를 포함해 145%에 달했던 중국 관세에 대해서도 조정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 증시는 트럼프의 널뛰기 관세정책에 따라 두 자릿수 등락을 거듭하면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트럼프가 사실상 관세폭탄을 전면 유보하는 제스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 각국 수입품에 의존해야 하는 월마트 같은 대형 소매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건스탠리 같은 금융 공룡도 마찬가지다. 당장 먹구름이 걷혔을지 모르지만 내일, 또는 90일 후에 하늘이 맑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의 가장 큰 적, 불확실성 아래에서는 적절한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변칙 플레이를 못 견디고 가장 먼저 불만을 터뜨린 이들은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이다. 이달 초 트럼프가 광범위한 관세조치를 발표한 다음 날 모건체이스 등 주요 은행 최고경영자들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만나 우려를 표명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선거 캠프 거액 기부자들도 별도로 재무장관과 비서실장 등을 통해 통사정을 했지만 헛물만 켰다. 트럼프를 지지했던 헤지펀드 억만장자들은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며 일종의 “트럼프, 손 떼!”라는 볼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불만에다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수십만 반(反)트럼프 시위가 두려웠을까. 아니면 국채 투매, 증시 불안에 따른 땜질 처방이었나. 13시간 만의 전격 보류 결정은 전투 중 포성이 잠시 멎는 정도의 짬을 가져다 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인플레이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고, 달러 자산 이탈, 국채 투매, 금융비용 상승 등 파장이 거세지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새로운 무역동맹 결성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역전쟁은 점입가경이다.
트럼프는 겉으로는 협상을 말하지만 실은 중국, 한국, 유럽 국가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진지하게 협상을 하지 않고 있다. 주요 타깃인 시진핑 중국 주석과도 협의가 없었다. ‘먼저 집을 불태운 뒤 재건은 나중에…’, 항상 이런 식이다. 관세의 폭보다 대책 없는 무모함과 즉흥적인 결정이 불안과 공포를 더 키우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아우성인데, 트럼프 핵심 관계자들은 태연하다. 모든 게‘계획된 전략’이라고 말한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처음부터 트럼프의 전략이었다”고 말했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여기서 뭘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기자들을 나무랐다. 요컨대 ‘트럼프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우리에겐 다 플랜이 있다’는 거다.
막가파식 트럼프의 무모함에는 이유가 있다. 1987년에 낸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서 그는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래야 상대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충격을 주고, 지렛대를 이용, 게임을 하듯 협상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것’, 이것이 거래의 달인으로서 그가 오래 체득해 온 노하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문제에 부닥치면 재고하고 타협하는 게 아니라 되레 자신의 생각을 더 밀어붙이고, 상대를 위협하는 습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직격탄을 맞는 건 항상 소비자들이다. 예컨대, 다음달부터 이탈리아산 올리브 가격은 20%, 과테말라산 바나나는 10%가 각각 오를 예정이다. 미국은 해산물과 커피의 80%, 과일 59%, 채소 35%를 수입하고 있어 이들 품목의 경우 폭등세를 보일 전망이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관세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성장을 둔화시켜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예고했다.
트럼프발 무역전쟁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무섭다. 후폭풍이 엄청나기도 하겠지만 언제, 누구를 향해 총을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Wanseob.k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