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거꾸로 박힌 탈원전 대못, 어떻게 뽑나

입력 2022-0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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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늦게라도 제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낯을 바꾼 한국수력원자력의 돌변은 기가 막힌다. 정권 막바지 자기부정(自己否定)은 앞으로의 책임 추궁을 조금이라도 비껴나려는 알리바이로 보인다. 기실 정부 정책의 일선 집행기관인 힘없는 공기업이 저항할 방도도 딱히 없다.

한수원이 작년 말 정부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확정을 앞두고 내놓은 의견서 얘기다. 원전이 ‘초(超)저탄소’ 에너지원이고, 원전을 배제한 태양광·풍력 등으로 탄소중립 실현은 가능하지 않으며, K택소노미에 반드시 원전이 포함돼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택소노미(taxonomy)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대응 등에 기여하는 활동의 목록이다. ‘친환경’ 투자와 지원을 결정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여기에서 빠지면 연기금이나 금융권의 ‘녹색금융’ 지원에서 배제된다.

한수원은 국내 24기의 원전을 운용해 전력의 약 30%를 생산하는 공기업이다. 이 회사의 전임 최고경영자(CEO)는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원전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다가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기고 2018년 1월 물러났다. 후임인 지금 CEO는 멀쩡히 돌아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서두르면서 탈원전에 앞장섰다. 종합에너지기업을 표방해 새만금의 수상 태양광단지 사업자가 됐고, 회사 이름에서 ‘원자력’을 빼려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 한수원이 이제 환경보전을 위한 녹색에너지라며 원전의 역할 확대를 주장한 것이다. 탄소 배출량, 발전시설 점유 면적, 원료 수급 용이성 등의 이점을 들었다. 전력 1㎾h 생산 때 원전의 탄소 배출은 12g에 불과한데, 석탄 820g, 액화천연가스(LNG) 490g, 태양광 27∼48g, 풍력 11~12g이라는 것이다. 또 태양광은 원전보다 169배, 풍력은 37배나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전 연료인 우라늄 수급도 안정적이고 저장·수송이 편리하다고 강조했다.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만든 ‘전원별 온실가스 배출계수’ 보고서의 인용이다. 과학자들이 그동안 수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탈원전의 오류를 지적해 온 내용과 같다. 발전 비용도 원전이 가장 싸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탈원전은 애초부터 엉터리 반핵론(反核論)의 이념에 갇혀 과학이 입증한 진실을 뭉갠, 무지(無知)하고 그릇된 고집이었다. 결국 지난 5년 막대한 국가경제적 손실만 키웠다. 세계 최고의 한국 원전 기술력이 추락하고 산업 생태계와 인력 기반은 쑥대밭이 됐다.

환경부는 지난 연말 K택소노미를 확정하면서 끝내 원전을 제외했다. 어이없는 건 탄소배출이 원전보다 수십배 많은 LNG는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앞뒤 안 맞는 자가당착이다. 문 대통령의 탈원전을 거스를 수 없고, 석탄 발전은 폐기해야 하는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으로 전력수요를 맞출 수 없으니 이런 모순이 나왔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원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했다. 유럽이 최근 원전을 녹색에 포함시키는 EU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했다. 미국 또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을 탄소중립의 핵심 대안으로 삼고 기존 원전도 청정에너지에 편입할 움직임이다. 한국만 거꾸로 탈원전이 탄소중립이라며 역주행이다.

낮 시간에만 발전이 가능하고, 바람 불 때에만 돌아가는 태양광과 풍력은 근본적으로 에너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대용량 전력이 상시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하는 기저부하(基底負荷)를 감당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이들 재생에너지의 부존여건이나 지리적 개발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인공지능(AI), 데이터, 로봇, 미래자동차 등 정보기술(IT)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전력 수요의 폭발적 증가를 예고한다. 우리는 이웃 나라에서 전력을 사올 수도 없는 ‘에너지 외딴섬’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들어 안전성을 자꾸 문제삼는데, 그런 결함 모델인 구식의 비등수로(BWR)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원전은 모두 가압수형 경수로(PWR)다. 현대 산업시설에서 설계·건설·운전의 모든 체계가 이보다 높은 기준과 다중(多重) 안전구조로 떠받쳐지는 건 없다.

한수원은 최근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도 국내 원전은 과할 정도의 높은 설계기준 채택으로 지난 40년 최고로 안전하게 운용돼 왔고, 탄소중립에 원전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원전은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을 모두 부정한 것이다. 원전은 청정에너지로서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이자 국가안보의 근간이다. 탈원전을 당장 폐기해야 할 이유만 차고 넘친다. 지금 잘못 박힌 탈원전의 대못을 뽑아 내도 흉한 흔적이 남는다. 그럼에도 빨리 되돌려 상처를 메우고 5년의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아야 한다. kunny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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