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실제 정착’은 절반도 안돼
E-7 비자 전환 고작 1~2% 남짓
취업 플랫폼 등 정착 인프라 부족
“외국인 정착 유도, 맞춤지원 필요”
한국의 인재 유출 문제는 내국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학업을 마친 외국인 유학생들도 정착 대신 귀국을 택하거나 제3국으로 이탈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높은 채용 장벽, 부족한 정착 인프라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다. 미래 첨단 산업을 이끌 잠재적 두뇌 풀이 빠르게 고갈되면서 ‘인재 공백’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28일 법무부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에 체류하는 유학생 수는 22만6507명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제외하면 매년 증가 추세를 보여온 외국인 유학생의 63%는 졸업 후에도 한국에 남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중 19.6%는 전문과학 업종에 취업을 희망했다.
하지만 실제 정착으로 이어지는 비중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특히 고급 인재일수록 이탈률은 더 높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를 보면 박사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유학생 중 본국으로 돌아간 비율은 2016년 40.9%에서 2021년 62.0%로 급증했다. 한국에 남는 비중은 39.1%에서 29.8%로 줄었다. 고급 두뇌들이 한국에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 장벽이다. 외국인 유학생 중 전문인력(E-7) 비자 전환에 성공한 비율은 1~2% 남짓이다. 자격 요건이 까다롭고 비자를 1~2년 단위로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인재와 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크다. 정부가 올해 일부 임금 요건을 완화했지만 근본적 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았다.
AI 추천 뉴스
국내 한 IT기업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비자 연장이 안 되고, 회사도 매년 서류를 준비해야 해서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불편을 넘어 외국 인재의 이탈을 가속화하는 시스템적 리스크다.
채용 절차의 복잡성과 언어 장벽도 외국인 유학생의 이탈을 부추긴다. 특히 인력·행정적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 채용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수업이 대부분 영어로 진행되고, 지도교수와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어 학습 필요성이 낮다. 취업 정보 플랫폼 부재도 외국인 유학생의 구직 활동을 가로막는다.
유학생 이탈은 첨단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국내 이공계 박사과정 외국인 유학생의 72.2%는 디지털, 바이오, 모빌리티 등을 전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연구개발(R&D)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분야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인재 유치를 위한 비자 패스트트랙(심사 절차 간소화) 제도, 고용 추천 및 면접 주선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해외 주요국들이 인재 유치에 공을 들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은 ‘J-FIND’ 제도를 통해 세계 100위권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취업·창업 준비가 가능한 비자를 발급해 준다. 싱가포르는 글로벌 고급 인재들에게 체류 비자뿐만 아니라 소득세 감면 혜택도 제공하며 정착을 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해외 인재들이 체류를 넘어 정착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승원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연구개발(R&D) 분야 외국인 고급 인력의 국내 정주 여건은 일부 개선됐지만, 정책적 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여전히 낮다”며 “첨단 분야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초기 유입 단계에서는 경제적 처우를, 정착 단계에서는 생활 인프라를 강화하는 등 경력 단계별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