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지난 6월 중순 일본 오사카로 친척들과 3박 4일간 여행을 갔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선에서 줄타기를 하며 엔저가 고조될 무렵이었다. 수치로만 확인하던 엔저를 현지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정말 쌌다. 더욱 좋았던 점은 한국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물품과 서비스의 질도 훨씬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해외 여행을 떠나면 세계 어디서나 팔고, 제품 간의 차이가 크지 않은 스타킹을 통해 그 나라의 물가를 짐작해 본다. 여행중 일본의 한 드러그스토어에서 본토의 G사 팬티스타킹을 1개에 약 300엔으로 3000원이 안 되는 가격에 구입했다. 국내서 자주 방문하는 드러그스토어에서는 토종 V브랜드 팬티스타킹이 이보다 최소 1000원정도 더 비싸다. 일본 스타킹은 가격뿐 아니라 품질도 한국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신어보니 짱짱한 것은 물론 다리에 화장을 한 것처럼 미적 효과가 상당했다.
스타킹뿐이겠는가. 옷, 음식, 서비스 등 우리나라보다 더 저렴하고 좋은 것이 태반이었다. 요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큰 가방을 챙겨가는 것이 지침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됐다. 일본에서 실속 쇼핑할만한 것들이 많은 것이다.
일본의 제품과 서비스 수준은 과거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했지만 20년간의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더욱 내실이 다져졌다고 한다. 여기에 2013년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로 가격경쟁력까지 겸비하게 됐다.
한국 기업들이 떨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런 가운데 엔화처럼 원화도 가치를 절하해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산업계를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본처럼 인위적으로 통화를 절하해 가격경쟁력을 높이면 수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주요 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이를 지속할 수 없고, 과거처럼 내수를 희생해야 하는 부작용을 답습하게 된다.
한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오랜 기간 수출기업에 편애적인 고환율 정책을 시행해 왔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양해(?)하에 준비시간을 벌어줬던 것이다. 하지만 전국민의 경제생활 속속히 영향을 미치는 환율을 무한정 떠받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한국경제는 이미 내수와 수출 부문 간의 불균형이 심각해 절름발이 경제구조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넘사벽’ 가격경쟁력을 보유한 중국이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지 않는가.
더군다나 원화 가치는 이미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이다. 빅맥지수로 본 한국의 원화는 실제보다 20% 이상 절하돼 있다. 지난 16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빅맥지수는 3.76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에서 맥도날드 빅맥 햄버거 1개 가격(4300원)을 달러로 환산하면 3.76달러로 미국의 빅맥가격 4.79달러를 고려하면 원화가 달러 기준으로 21.5% 낮게 평가됐다.
결국 수출 부진을 해결하는 길은 기업들이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입버릇처럼 환율 탓만 하기보다 많은 이들이 구입하고 싶을 정도의 경쟁력을 확보한 후에 환율의 불균형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기업들의 환율 응석은 이미 충분히 받아줄 만큼 받아줬다고 느낀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