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맙시다. 열심히 일해서 5년 뒤에 MCM 본사를 인수합시다.” 외환위기가 불어닥쳐 국내 패션업계 줄도산이 이어진 1997년.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MCM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국을 세계 명품 강국 반열에 올려 놓기 위해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국내에서 생산까지 담당했던 만큼 끝까지 붙들기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5년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을 인수했다. 한국 최초로 유럽 럭셔리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그를 향한 국내 패션업계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그의 특이한 배경에 눈길이 쏠렸다.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의 딸로 태어나 재벌가의 딸로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이후 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조용한 삶을 거부했고 결국 생활비가 중단되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지인의 소개로 얻은 첫 직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유명 백화점인 블루밍데일. ‘패션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미국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백화점이다. 이때부터 그의 패션에 대한 열정이 시작됐다.
1989년 한국에 귀국한 그는 1990년 성주인터내셔널을 설립해 그동안 밀수품으로 들여오던 구찌, 이브생로랑 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공식 수입 사업을 시작하면서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김 회장은 MCM을 손에 얻자마자, 그의 머릿 속에 계속 담겨있던 비전을 순차적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2년만에 미국 블루밍데일 백화점 14개 매장에 MCM을 한꺼번에 입점시켰다. 각국의 명품 백화점에 MCM을 입점시켜 브랜드 경쟁력을 쌓았다.
세계 패션 시장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매출도 덩달아 급증했다. 인수 이후 1억 달러였던 MCM의 글로벌 매출은 2011년 4억 달러, 작년에는 5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6억5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3~4년 내에 15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 주식 상장도 검토 중이다.
‘MCM은 한국의 요람에서 키워낸 글로벌 아기이며, 21세기를 대표하는 명품’이라는 김 회장의 발걸음이 더욱 바빠지고 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본격적인 역량 강화에 돌입키로 한 것이다.
김 회장은 28일 강남구 도산대로에 위치한 신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비전을 실천해 300개 매장을 2020년 2450개로 확대하고, 7000억원대 매출을 2조원까지 끌어올리겠다”면서 “또 2017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인 7조원대의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의 1위도 탈환(현재 종합3위, 패션2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새롭게 제시한 MCM의 비전은 △글로벌 디자인 자산 강화 △R&D센터 구축 및 확대 △유통채널의 브랜드화 및 옴니 채널 구축 △유명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가치 재창출 등이다. MCM은 유럽 내 최고 수준의 디자인 센터를 건립해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MCM만의 글로벌 디자인 자산을 확보할 방침이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써 하이 퀄리티의 제품공급을 위해 R&D센터에 대한 투자도 강화한다. R&D 센터에서는 하이테크 신소재를 연구하고 이를 활용해 MCM만의 자체 소재를 개발할 예정이다.
플래그십스토어도 확대하기로 했다. MCM은 독일 뮌헨 플래그십 스토어를 시작으로 미국, 몰디브, 일본, 프랑스, 바레인,중국 등 올 연말까지 10여개국에 21개 매장을 순차적으로 오픈할 예정이다. 마케팅 전략은 콜라보레이션 작업과 쿤스트 프로젝트 등을 지속한다.
이와 더불어 패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빠르면 9월께 일본 기업을 인수한다. 다만 최근 매물로 쏟아지고 있는 올드한 패션 브랜드들은 인수하지 않을 방침이다. 김 회장은 “MCM이 기존에 협업하고 있던 회사로 좋은 기술자와 디자이너,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인수합병을 조율 중”이라며 “향후 기업과 브랜드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적 인수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회장은 “ MCM이 캐주얼의 대명사로 통하던 ‘백팩’을 명품화시킨 전례를 두고 유럽에서는 샤넬이 우리에게 한 손의 자유를 줬다면 MCM은 두 손의 자유를 선사했다고 평가한다”며 “MCM의 글로벌 위상과 저력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