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몰락의 재구성]빚으로 지킨 모래성… 오너 집착에 '와르르'

입력 2013-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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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매각 등 위기 탈출 기회 왔지만 경영권•계열사 지분 방어 매달리다 놓쳐

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몰린 동양그룹이 결국 법정관리행(기업회생절차)을 선택했다. 1957년 창립 이래 재계 5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은 설립 56년 만에 4만여명의 개인투자자에게 수조원의 피해를 떠넘기고 공중분해될 처지에 놓였다.

◇동양 계열사 5곳 법정관리 신청 = 동양그룹은 최근 ㈜동양,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네트웍스 등 5곳의 계열사가 관할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5개사 모두 법정관리 개시가 결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청산 가치가 더 높아 개시 신청이 기각된 계열사들은 파산 절차를 밟게 되는데, 특히 동양인터내셔널과 레저는 지난해 말 기준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현재 동양그룹은 법정관리를 진행하면서 일부 계열사만 남기고 매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현재현 회장이 경영권을 유지하더라도 결국 그룹의 명맥만 유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재계와 금융권 등은 현재현 회장 등 오너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입을 모은다. 과감한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계열사 지분과 경영권 등에 지나치게 집착해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동양그룹은 1957년 강원도 삼척에서 시멘트 사업으로 출발한 기업이다. 창업주인 이양구 회장의 큰 사위인 현재현 회장이 1988년부터 경영을 맡아, 재계에서는 드문 ‘사위경영’을 해왔다. 검사 출신인 현 회장은 1983년 34세의 나이에 동양시멘트 사장을, 1988년 동양증권 회장을 거쳐 1989년 동양그룹 회장에 올랐다.

동양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부진으로 모기업인 ㈜동양과 주력 계열사인 동양시멘트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재무구조 건전화를 위한 자산 매각이 지연되면서 사실상 ‘그룹 해체’ 수순을 맞게 됐다.

동양그룹은 당초 부실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시멘트 △화력발전 △금융부문 등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폐열발전소, 레미콘 공장, 창고 등을 잇달아 처분해 왔다. 동양그룹은 동양매직을 포함해 기업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에너지 부문(동양파워) 지분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특히 경영권에 연연해 자산매각 타이밍을 놓친 점이 법정관리를 앞당긴 요인으로 분석된다. 실제 지난달만 해도 동양파워 지분매각 협상이 무산됐다. 삼척화력발전소 사업자인 동양파워는 기업가치만 1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양이 경영권 이외의 지분만 팔려고 했다는 후문이다.

알짜로 알려진 동양매직의 경우, 지난 6월 매각 우선협상자로 교원그룹을 선정했으나 계약 직전 무산됐다. 동양은 매각 가격으로 2500억원을 희망했으나, 교원은 이보다 300억원 적은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은 7월 말 교원그룹에서 케이티비(KTB) PE으로 협상 대상자를 변경했지만 KTB PE는 지난달 30일 동양매직 인수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에도 한일합섬 매각을 위해 협상을 벌였지만 막판에 결렬됐다. 동양생명은 9000억원을 받고 보고펀드에 매각했지만 투자자 자격으로 2000억원 이상을 재투자해 끝까지 지분 일부를 남겼다.

◇CP판매 등 도덕성 논란도 = 동양그룹 사태는 오너 경영진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동양그룹은 지난달 30일 (주)동양과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한 데 이어 1일에는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당초 동양시멘트는 국내 2위의 시멘트 생산 능력을 갖춘 데다 부채비율이 196%로 다른 계열사보다 낮아 법정관리를 피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한데는 현 회장이 기존 관리인유지제도(DIP)를 악용해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DIP 제도는 횡령이나 배임 등 부실경영에 대한 중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기존 법인 대표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 계속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경영진이 채권단의 간섭이 심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보다는 법정관리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 회장이 회사가 정상화돼 법정관리를 졸업할 때 시멘트를 통해 경영권을 되찾아 오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동양그룹은 2010년부터 은행 여신을 줄여 주채무계열에서 빠지고 회사채나 CP(기업어음) 등 시장성 차입금으로 연명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채와 CP를 대거 발행해 계열사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고금리로 팔았다.

동양의 회사채·CP는 2조원대로 은행 등 금융기관 대출 1조4000억원보다 많다. 금융기관 대출이 막히자 동양 계열사들이 공시 의무와 이사회 결의, 발행한도 제한 등이 없는 CP를 마구 찍어댄 것이다. 동양증권에서 동양계열사 회사채·CP를 사들인 개인투자자는 4만7000여명가량으로 또다시 개미들의 잔혹사가 재현됐다. 동양그룹 경영진이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저버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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