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기존 경영자의 관리인 제도는 차악의 선택

입력 2013-10-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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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동양그룹, 웅진, STX 등 기업의 부도가 줄을 이으면서 대주주들, 재벌총수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비난 중의 하나는 회사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도 여전히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 경영자가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이 되는 제도를 영어로는 ‘DIP(Debtor in Possession)’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를 피하기 위해 작은 문제를 선택했다는 사실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05년 3월에 제정된 현재의 통합도산법이 DIP 제도, 즉 기존경영자 관리인제도를 원칙으로 채택했다. 해당 법 이전까지는 기존 경영자로부터는 경영권을 박탈하고 대신 이해관계 없는 제3의 인물을 관리인으로 세우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2005년 새 법에서 이렇게 바뀐 것이다. 물론 최근의 웅진그룹이나 STX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채권단이 강력하게 반대할 경우, 또는 기존 경영자가 횡령 등을 해서 도산에 이른 경우 등은 기존 경영자가 아닌 제3의 인물을 관리인으로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는 기존 경영자가 관리인이 되곤 한다.

통합도산법이 DIP 제도를 택한 것은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을 박탈함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부작용은 기존 경영자가 웬만해선 법정관리 신청을 안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법정관리로 들어가면 경영권을 잃게 될 테니 기존 경영자는 어떻게든 법정관리를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곤 한 것이 사실이다. 법정관리란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입원시켜 놓고 수술도 하고 약도 줘서 다시 살려내기 위한 절차인 셈인데, 경영권을 잃게 되는 기존 경영자가 병원에 안오고 끝까지 버티다가 회사가 완전히 거덜난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또 이해관계가 없는 관리인도 그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회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조적인 인센티브와 관련된 것이었다. 법정관리가 끝나면 관리인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따라서 회사가 법정관리를 벗어나 회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마치 병원이 입원료를 벌기 위해 보험환자를 퇴원시키지 않고 끼고 도는 것과 같은 일이다.

DIP 제도, 즉 기존경영자 관리인 제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회사가 거덜나는 ‘최악(最惡)’의 상태까지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경영자의 경영권 유지라는 ‘차악(次惡)’을 선택한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동양그룹의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은 새로운 법정관리 제도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사례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직원들조차 법정관리를 뜻밖으로 받아들인 것은 회사가 완전히 거덜난 상태가 아님을 증명해준다. 이 제도의 취지대로 동양그룹은 조기에 병원에 입원을 한 셈이다.

하지만 DIP가 차악의 대안이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차악도 악은 악인 만큼 그 부작용을 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부도의 주역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구조조정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높다. 즉 알짜 계열사를 팔면 빚을 갚을 수 있는데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또는 지나치게 높은 값을 받으려다 매각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동양그룹의 구조조정이 실패한데에도 이런 요인이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회사의 부도나 도산과 관련된 제도는 어떤 것을 택해도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부도나 도산이라는 상황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DIP 제도가 과거의 관리인 제도보다 더 나은 제도인지는 몇 년 더 두고 보면서 검증해 봐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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