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금융위기와 유럽발 재정위기를 거쳐 중동의 ‘재스민혁명’까지, 글로벌 경제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깊은 고찰과 비전으로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학들의 시각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 시대를 이끌고 있는 석학들의 비전을 분석하고 상아탑을 넘어 실물 경제의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들의 경제이론과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글 싣는 순서>
① 라구람 라잔 시카고대 교수
②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③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④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⑥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⑦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⑧ 로버트 먼델 컬럼비아대 교수
⑨ 존 내쉬 프린스턴대 박사
⑩ 앨빈 토플러 뉴욕대 학사
⑪ 폴 새무얼슨 하버드대 박사(2009년 사망)
⑫ 오마에 겐이치 UCLA 교수
⑬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
⑭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학원대 교수
⑮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교수
유로화가 출범한지 올해로 13년째. 그리스에 이어 아일랜드와 포르투갈까지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유로존의 5대 경제대국인 스페인마저 구제금융설의 주인공으로 지목되면서 유로존의 존립 여부는 물론 단일통화 동맹의 구조적 결함이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유로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라고 할까.
먼델 교수는 1961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 9월호에 ‘최적통화지역 이론(The Theory of Optimum Currency Area)’을 발표해 유럽 지역의 단일 통화인 유로화 도입의 초석을 닦은 장본인이다. 그는 이 공로로 유로화가 공식 출범한 1999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먼델 교수는 변동환율제가 시장의 힘에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연구한 경제학자였다.
그는 국가마다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 등 환율체계가 다른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이 국제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바람직한 통화정책을 제시했다. 그것이 ‘최적통화지역 이론’이다.
연구 초기 먼델 교수는 캐나다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고정환율제가 적합한지 변동환율제가 적합한지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국가가 고정환율제를 채택하며 자체 통화를 중시하던 시기였던만큼 먼델의 연구는 그다지 조명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먼델은 이같은 폐쇄적 경제 모델에 대외무역과 자본이동의 요소를 대입해보고, 국제적 자본 이동의 정도에 따라 정책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밝혀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먼델-플레밍 모델’이다.
그에 따르면 자본시장에서 한 나라의 환율은 그 국민이 자체 통화를 소유하려는 의지와 욕구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그 나라 국민이 자국 경제의 전망과 인플레이션, 통화 정책 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먼델 교수가 말하는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어느 특정지역이 단일통화 도입으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이를 활용하면 경제적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일통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자본과 재화, 노동력 등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재정 이전 등을 통한 자원배분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이 경우 실업률이 높은 국가의 노동력이 그렇지 않은 국가로 자연스럽게 이동, 회원국간 실업률이 동일해지면서 결국 개별 통화정책이 필요없게 된다는 단일통화 창설의 완벽한 이론이라는 평가다.
특히 단일통화의 장점은 통상(通商)에 드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물가를 안정시키는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먼델은 주장했다.
이 같은 그의 연구 결과는 30년이 지난 뒤에야 타당성이 입증됐고, 유럽단일통화제도(EMU) 달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로화가 출범하기 전인 1990년말 세계는 많은 기업과 국가가 경제적 생존과 경쟁성 확보를 위해 세계화를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했고, 환율의 불안정성이 세계화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라고 간주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통화를 통해 국경을 넘어 자유로운 자본을 허용해야 한다는 먼델의 이론은 제대로 먹혀 들었다.
유로화 출범 초기 11개국에 불과하던 유로존 회원국은 2011년 현재 오스트리아 벨기에 키프로스 에스토니아 핀란드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 17개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유로존은 현재 유로화 출범 당시 기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잇단 재정위기로 유로존의 결함이 속출하는 가운데 지금의 단일통화 체제에서는 회원국 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로존 붕괴설이 힘을 얻고 있다.
유로존 회원국의 경제력 격차가 일련의 재정위기 등을 거치며 증폭된 상황에서 지금처럼 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개별 국가로는 독일 등이 허약한 국가들을 계속 도와주는 비정상적인 시스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평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재정감시 시스템 구축을, 장기적으로는 EU 창설의 최종 목표인 정치적 통합을 통해 단일통화와 단일 재정시스템이 결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먼델의 ‘최적통화지역 이론’은 유로화의 탄생에는 기여했지만 이후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유로존 회의론자들은 유로존이 처음부터 이 조건을 만족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EU 회원국들의 국민은 역내 국경개방 등으로 출입은 자유롭다. 그러나 자유로운 출입을 통해 그리스의 실업자가 독일에서 손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일통화 동맹의 구조적 문제점은 이른바 ‘불가능한 삼위일체(impossible trinity)’ 이론으로 설명되고 있다. 개방경제 국가는 △자본이동의 자유 △환율 안정 △통화정책의 독립을 추구하지만 이는 구조적으로 동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
이 때문에 한 국가는 두 가지를 택하는 대신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데, 유로존 회원국은 유로화 도입에 따른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안정된 환율을 얻었지만 독자적인 통화정책은 포기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로화의 아버지인 먼델 교수의 ‘최적통화지역 이론’을 보완할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