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왜 심야택시도 아닌데 할증인가

입력 2023-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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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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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최고세율 평균은 14.5%
이제 괴물 된 ‘징벌적 과세’ 상속세
‘완전 철폐’ 포함한 전면 재검토를

영국 창문세는 난로세를 대체한 세금이다. 앞서 1662년 찰스 2세가 부과한 난로세는 난로 수를 파악하기 위해 세리가 집안에 드나드는 문제점이 있었다. 창문은 길거리에서 셀 수 있다. 프랑스도 1798년 창문세를 만들었다. 다만 가로 길이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두 창문세는 도시 경관을 바꿨다. 시민들은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을 포기했다. 프랑스에선 세로로 긴 창문을 가진 집들이 생겨났다. 영국에선 창문 없는 집들이 등장했고….

돈과 소비, 투자의 균형으로 경제를 설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존 힉스는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왕들이 대개 쪼들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 국가도 마찬가지다. 늘 쪼들린다.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국가 세입이 그 국가의 힘”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세 징수권이 마구 휘두를 힘인지 의문이다. 도전이 있으면 응전도 있게 마련. 기형 창문, 없는 창문의 집들이 나온다.

근육 자랑이 능사가 아니다. 비용, 갈등, 저항을 최소화할 세정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근래 관심사로 부상한 상속·증여세부터 그렇다. 특히 우리 상속세는 세계적으로 혹독한 세제라는 큰 결함이 있다. ‘완전 철폐’를 포함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국 최고 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두 번째로 높다. 최고 세율 1위는 55%인 일본이지만, 위안거리는 못 된다. 우리 기업 대주주에는 20% 할증이 붙어 60%가 되기 때문이다. 왜 심야 택시도 아닌데 할증인지 모를 일이다.

총체적 결과는 참담하다. 삼성그룹이 좋은 예다. 오너 일가는 2020년 10월 이건희 선대회장 타계 이후 12조 원을 부과받았다. 세계 1위 상속세액이다. ‘역사를 바꾸기도 하는 무서운 세금 이야기’에 따르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유산에 부과된 상속세가 3조 원이다. 이조차 조족지혈이다. 두 세금의 차액만으로 유망한 스타트업 투자를 건당 100억 원씩 근 1000건 할 수 있다. 초기 투자액을 낮춘다면 1만 건 가까이도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1~2%만 성과를 내도 국부가 달라지고 수만, 수십만 일자리가 생겨난다. 그런 알토란 같은 종잣돈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다.

이런 쟁점에 “왜 부자 걱정을 하느냐”며 코웃음 치는 부류가 있다. 젖 먹던 힘까지 불어넣는 코웃음이다. 상속·증여세 개혁을 가로막는 것도 바로 이런 부류다. 세상을 보는 눈이 저리 어두울 수가 없다. OECD 회원국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평균 14.5%다. 호주·캐나다 등 14개국은 아예 상속세가 없다. 상속세 있는 나라만 재분류해 따로 평균을 내도 최고세율은 27.1%다. 왜 이리 낮나. 다들 부자 걱정을 해서일까.

가업상속제 등으로 낮은 세율 부담을 더 덜어주는 선진국도 수두룩하다. 일본도 가업승계 공제 혜택을 포함하면 실제 최고세율은 11%로 확 낮아진다. 북구 복지 모델로 거론되는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왜 이랬겠나. 높은 세율의 부작용으로 국가 경제가 골병이 든다는 경험칙에 따라 새 길을 찾은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주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승계 시 10% 세율이 적용되는 한도를 현행 60억 원에서 120억 원으로 확대했다. 고무적이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감도 없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설립 30년이 넘은 중소기업 중 대표가 60세 이상 된 곳이 81%다. 승계 미련을 버리고 매각·폐업을 고려하는 창업자가 절반을 웃돈다고 한다. 세금 부담이 그토록 치명적이다.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2000년 이후 23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자산가격은 치솟고 인구는 고령화했다. 삼성 일가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기업에서, 소시민 가계에서 상속세 폭탄이 터지게 돼 있다. 서강대 임채윤 명예교수는 본지 칼럼에서 “징벌적 과세의 성격을 갖는 상속세를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 이제는 중산층도 징벌하는 괴물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보태고 뺄 것이 없다. 민생 보호 차원의 전면 재검토가 급하다. 그런데도 다들 눈만 껌뻑인다. ‘부자 감세’ 프레임을 걸고 코웃음만 치거나.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의 창문세 촌평을 들려주고 싶다. 그는 창문을 막으면서 씁쓸히 말했다. “국가 재정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시민들의 즐거움만 줄어들었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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