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 사이] ⑭ 미국에 투자해라! 반도체기업들의 4가지 고민

입력 2023-0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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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조이기’ 속 ‘반도체·과학법’ 앞세워 줄세우기…美 ‘반도체 부흥’ 후 토사구팽당할까 우려도

중국 기술발전을 견제하고 미국 첨단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작년 8월 ‘반도체와 과학법’, 10월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정책이 발표되고, 마이크론 인텔 등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해외로 떠난 기업의 본국 복귀)과 삼성전자 TSMC 등 외국기업의 대미 투자가 가속화하고 있다. 나아가 주정부까지 글로벌 반도체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미국 반도체산업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오리건주 주지사는 작년 10월 서울을 직접 방문해 삼성전자, 서울반도체, 반도체 장비회사인 주성엔지니어링과 엑시콘, 반도체 세정·코팅기업인 코미코 등 기업을 만나며 오리건주가 반도체 투자 최적의 장소라고 역설했다. 이미 총 80억 달러 상당의 투자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텍사스 삼성전자 공장 인근에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판매하기 위해 삼성물산과 동진세미캠도 미국 화학유통 기업과 합작투자법인 형태로 미국 투자를 확정하는 등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는 더욱 빨라지는 추세다.

과거 중국이 세계 첨단제조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면, 미·중 간 첨단기술 대립이 본격화하면서 이제 미국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미국은 엄청난 세제 혜택과 막대한 보조금 정책을 내세우며 한국, 대만, 일본 반도체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 반도체시장인 중국을 등지고 미국의 우대정책만 믿고 투자해야 하는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미국의 중국 제재에 따른 중국시장 불확실성과 중국의 기술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측면에서 미국 투자는 의미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결국 미국과의 첨단기술 경쟁에 따른 부정적 영향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자율주행시스템 분야에서 미국을 글로벌 제조업 기지로 구축하겠다고 대외적으로 공언한 바 있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투자를 할 수 없는 독소조항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미국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겉으로는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속내는 그만큼 복잡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대미 투자 고민과 우려를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케이트 브라운(맨 오른쪽) 미국 오리건 주지사가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면담을 갖고, 양국간 첨단산업 협력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논의하고 있다. 브라운 주지사는 방한 일정 중 국내 반도체 기업을 만나 오리건주가 반도체 투자 최적의 장소라고 역설했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케이트 브라운(맨 오른쪽) 미국 오리건 주지사가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면담을 갖고, 양국간 첨단산업 협력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논의하고 있다. 브라운 주지사는 방한 일정 중 국내 반도체 기업을 만나 오리건주가 반도체 투자 최적의 장소라고 역설했다. 사진제공 산업통상자원부

1. 보조금·우대혜택 지속 제공될까

첫째, 미국이 지속적으로 보조금 및 우대혜택을 제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미국이 꿈꾸는 ‘메이드 인 USA’를 만들기 위해서는 1조 달러(약 1250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한 미국 우대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중국 제재’, ‘반중국’ 정책노선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대중 접근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향후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대중국 직접제재는 더욱 강화되겠지만, 지금처럼 외국기업들에 엄청난 보조금을 지속해서 줄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미국은 중간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미 2024년 11월의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하며 양당 간 치열한 수싸움과 비난이 오가는 정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양극화된 정치지형에 따라 중국 제재에 대한 균형을 잃어버릴 가능성(overbalancing)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처럼 자국민의 세금을 동원해 퍼주기식으로 외국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을 공화당이 지속할 것인지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또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더 강력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중국 제재를 하면서 미국에 투자한 외국 반도체 기업들에 무리한 요구와 압박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나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당선되더라도 중국 제재의 기조는 변함없겠지만, 제재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국 반도체기업 위주로 보조금 정책이 일부 수정·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2021년 3월 의회 산하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는 ‘중국과의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제조·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한 바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반도체 제조에서 자국기업에 더 많은 세제혜택을 주어 역내 시설투자를 더욱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론이 향후 20년 동안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메가팹을 건설하고, 인텔이 2025년까지 20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한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한 것도 중장기적인 포석일 수 있다.

2. 과잉생산 후 수익악화 가능성

둘째, 규모 대비 부족한 보조금과 향후 과잉생산으로 인한 수익악화 가능성의 고민이다. 투자기업들은 미국의 보조금 규모가 실제 투자에 비해 많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다. ‘반도체와 과학법’은 제조, 연구개발(R&D) 및 인력양성 등에 약 2800억 달러 규모를 지원하는 역대급 첨단산업 육성정책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 중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기업에 527억 달러가 배정되어 있다. 527억 달러도 자세히 살펴보면 제조공장 설립에 390억 달러, R&D에 110억 달러, 기타 27억 달러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반도체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기업들에 배정된 390억 달러를 마이크론, 인텔, 삼성전자, TSMC 등이 나누어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대략 19개의 새로운 반도체 공장이 신설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390억 달러를 19개 기업으로 나누면 기업당 약 20억 달러의 보조금을 받는 셈이다. 반도체는 기술집약적 산업인 동시에 엄청난 설비가 투입되는 자본집약형 산업임을 감안한다면 많지 않은 돈이다. 실제 반도체 최첨단 팹 1곳을 짓는 데 120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고, 향후 지속적으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TSMC 설립자인 모리스 창 회장도 미국의 보조금이 결코 많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향후 미국의 추가적인 보조금 지원정책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창 회장은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TSMC가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공장에 약 120억~40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으로, 실제 미국 공장 칩 생산비용이 대만보다 50%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가 몰리면서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급과잉 현상이 일어나고 그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인해 투자기업의 수익은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엔지니어 구인난·기업문화 부적응

셋째,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 구인난과 기업문화 부적응에 따른 인력 이직현상이 늘 수 있다는 고민이다. 사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 확대는 미·중 충돌에 따른 미국의 압박요인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국 내 반도체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직접투자를 통해 미국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투자를 단행하면서 구인난이 현실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텔과 TSMC가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의 위치가 모두 애리조나주로, 이미 두 기업 간 치열한 반도체 엔지니어 구인전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동서양 기업 및 조직문화의 차이로 인한 현지경영의 어려움도 생길 수 있다. TSMC는 애리조나 피닉스 공장에 투입될 미국 반도체 엔지니어를 뽑아 대만으로 보내 사전교육과 현장실습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미국 엔지니어들이 대만의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고 이직하는 경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대만의 야근문화 및 생활·식습관으로 인해 미국과 대만 엔지니어들 간 마찰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4. 결국 美기업과 경쟁, 주도권 상실?

넷째, 향후 미국 반도체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나아가 미국 정부가 규정하는 반도체 공정기술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고민이다. 미국은 전 세계 반도체 수요의 34%를 차지하고도 반도체 제조업 생태계 비중은 12% 정도에 불과한데, 향후 10년 안에 24%까지 확대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과 대만을 추월해 설계뿐만 아니라 제조까지 1등 국가로 만들겠다는 속셈이다. 자체적인 역량이 부족하니 한국과 대만의 도움을 받아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무력화하고, 동시에 과거의 반도체 제국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 반도체기업에는 미래의 도전이자 미국과의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는 것이다.

한편, 미국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에 들어감으로써 자국 및 중국 공장 내 반도체 공정기술 수준을 미국이 결정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자국 내 최첨단 반도체 공정과 똑같은 공정기술을 미국 공장에 적용하라고 우회적으로 주문할 수 있다. TSMC의 경우 원래 대만 공장에서 3나노 칩을 생산하고, 신설 중인 애리조나 공장에서는 5나노 공정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자국 내 제조공정은 최첨단, 미국 공장은 한 단계 낮은 공정기술로 구축하는 게 TSMC의 몸값을 올리고 급변하는 미·중 충돌에서 TSMC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타이베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창 회장이 TSMC의 애리조나 공장에서 5나노가 아닌 3나노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게 되었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글로벌 반도체 공정기술을 미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한국의 반도체 역량이 과거 일본처럼 미국 반도체산업 부흥에 이용되고 나중에 토사구팽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의 달콤한 유혹을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인 것이다. 미·중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반도체 전쟁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반도체는 이제 기업 영역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지켜야 할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최종병기 반도체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외교역량이 더욱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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