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국내 명품 시장은 대표적인 수혜주로 떠올랐습니다. 명품이 백화점을 먹여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찾는 사람이 늘고 가격도 계속 오르면서 리셀 시장을 노린 수요까지 더해져 백화점의 명품 매장들은 개점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른바 ‘오픈런’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명품 소비의 저변이 넓어진 데다 코로나19 시기에 비대면 소비가 활성화하면서 명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구매해야 한다는 공식도 깨졌습니다다. 최근 2~3년 사이 온라인으로 명품을 거래하는 패션 플랫폼들이 대규모 광고전과 마케팅으로 이름을 알리며 폭풍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커머스 업체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덩치는 커지고 있지만 누적되는 적자와 소비자 신뢰 등 해결해야할 숙제도 쌓이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실적을 보면 발란, 트렌비, 머스트잇 등 이른바 명품 플랫폼 빅3는 지난 해 나란히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회사별로 자세히 볼까요? 우선 김혜수를 모델로 내세우며 가장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발란의 지난 해 매출액은 521억7961만 원으로 2020년(242억2351만 원) 대비 115.4%가 늘었습니다. 영업손실 역시 2020년 63억5204만 원에서 185억5037만 원으로 192.0%나 크게 불었습니다.
같은 기간 트렌비도 매출액은 171억605만 원에서 217억6221억 원으로 27.2% 늘었지만 영업손실 역시 101억8987억 원에서 330억2980만 원으로 224.1%나 증가했습니다.
그나마 세 업체 가운데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던 머스트잇도 뚜껑을 열어보니 사정이 비슷합니다. 이 기간 매출액은 120억1915만 원에서 199억4949만 원으로 65.98%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2020년 14억 원 흑자에서 지난 해에는 100억 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시장 성장세를 타고 이들 빅3 업체 이외에도 명품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이미 3사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인 만큼 특별한 계기 없이 판도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빅3 업체간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다 보니 광고·마케팅비용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 대규모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데요. 실제로 발란은 배우 김혜수를 모델로 쓰고 있고 트렌비는 배우 김희애와 김우빈, 머스트잇은 배우 주지훈을 광고 모델로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발란은 지난 해 광고선전비로 190억9589만 원을 사용해 전년(34억6788만 원)보다 450% 치솟았습니다. 트렌비는 더 많은 298억8262만 원을 광고선전비로 사용했는데요. 2020년보다 228%가 급증했습니다. 머스트잇은 한술 더떠 지난 해 광고선전비로 전년보다 무려 582%가 늘어난 134억1727만 원을 썼습니다.
각 회사의 매출액 대비 광고선전비 비중을 보면 발란은 37% 수준이고, 머스트잇도 67%에 달하죠.트렌비는 매출액보다 광고선전비가 더 많은 13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지요. 하지만 직접 소비자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판매촉진비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거나 오히려 줄어든 곳도 있었습니다. 통상적으로 백화점들은 광고선전비로 매출액의 3~4%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분석인데요. 비교해 보면 이들 플랫폼이 얼마나 과도한 광고선전비를 사용하는지 알 수 있겠죠?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결국 서비스나 상품 차별화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광고마케팅비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사업의 영속성보다는 덩치를 키워 투자를 받거나 인수합병(M&A)에 목표를 두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명품 시장이 잘 나가는 상황이라 돈은 몰리고 있습니다. 발란만 하더라도 100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인데 이번 투자가 마무리되면 기업공개(IPO)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적은 그렇다 치더라도 덩치가 커지면서 소비자 불만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어 이 역시 해결과제로 꼽힙니다. 서울시 집계 결과 지난 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접수된 관련 상담만 총 813건에 달했습니다. 단순계산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2건 이상은 신고가 이뤄진 셈입니다. 주요 피해 및 분쟁유형은 ‘계약취소/반품/환급(42.8%)’ 관련이 가장 많았고 제품불량/하자(30.7%), 계약불이행(12.2%) 관련이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전자상거래법상 단순 변심에 의한 청약 철회도 7일 이내 가능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업체별로 기준이 달라서 소비자들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나 소비자원도 이들 업체를 주시하고 있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되는 업체를 대상으로 '전자상거래 관련 법령이 판매자 고지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을 표시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며 “또 명품 플랫폼 업체에 전자상거래법을 준수하도록 안내하는 한편 위반 사항에 대해선 개선을 권고하고 미시정 시 과태료 부과 등을 처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