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권의 글로벌 시각] 한미동맹과 지소미아

입력 2019-09-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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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핀란드 대사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종료한 데 대한 미국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실망과 우려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급기야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의 방위를 더 복잡하게 하고 미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미국은 한일 양국 모두의 동맹이다. 미국을 축으로 3국 간에 군사정보가 공유될 수 있다. 지소미아가 없다고 한일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2016년까지는 지소미아 없이도 살아왔다. 지소미아의 종료가 미군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키는 경우는 수많은 가정들이 동시에 맞아떨어졌을 때의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말을 동맹 사이에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적절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은 5월부터 다양한 종류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은 다양한 배경이나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군사적으로는 우리의 미사일 요격 수단을 무력화할 수 있는 공격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맨 먼저 상대의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것이 상례이다. 최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들은 주한미군과 전시 한반도에 전개될 증원군도 겨냥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의 맹방들은 이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갈 생각이 있지만, 미국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전시에 군인 사상자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은 훈련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강도 높게 할수록 연합방위능력이 제고되어 전쟁 억지력이 향상되고 미군도 더 안전해진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이것을 완전한 돈 낭비라고 했다. 매년 봄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른 양국 젊은이들이 어깨를 맞대고 훈련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든든한 안보의 상징이었다. 지소미아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서 갖는 의미를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의 이치와 균형을 말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이라고 말할 때 대한민국의 경제적 발전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성숙을 이야기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5년마다 선거를 치르고,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른 정부가 등장하기도 한다. 새 정부는 때로는 이전 정부와 매우 다른 정향의 외교안보 정책을 갖는다. 민주적 정치과정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현 미국 정부와 전 정부의 대외정책 차이는 세계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다행히도 한미동맹의 기초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과 미국에 정치적 스펙트럼이 멀리 떨어진 정부가 들어서고 이들이 각자 다른 정향의 대외정책을 추구하더라도 그것을 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의 현 안보 상황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던 시점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으로 위험 수준은 더욱 높아진 상태이다. 이러한 심각한 위협 앞에서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임무와 역할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런데 지소미아의 종료가 한미동맹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2의 애치슨 라인 이야기도 나온다. 6·25 때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의 참전을 단호히 거절했다. 멸망의 위기에 처한 나라의 대통령의 이러한 반응에 맥아더 장군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런 이승만은 전쟁이 끝나고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세계전략이 변화하고 동맹인 우리에 대한 기대도 변화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미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에 부여하는 의미도 잘 안다. 그러나 한일 간에는 복잡한 역사가 있고 사연이 있다. 진보정부 시절에만 한일 관계가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지소미아 사태를 두고 진보정부가 중국에 경도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말 많았던 톈안먼(天安門) 망루 행사 참석은 보수정부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다.

한일 안보협력 문제를 한미동맹에 대한 우리의 공약(commitment)을 측정하는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일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다. 지소미아 사태에 대해 미국 정부가 엊그제는 한일 양국 모두에 실망을 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별 쓸모가 없다. 애초부터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동북아 삼국지는 미합중국이 생겨나기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전부터 있어 왔다.

한미동맹은 한미 양국 모두에 엄청난 전략적 자산이다. 이런 한미동맹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본질이 아닌 문제로 한미동맹의 위기를 말해서도 안 된다. 크고 작은 갈등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메가폰을 들어서는 안 된다. 매 앞에 장사가 없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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