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캘리그라피 이화선 작가 "저작권 존중하는 사회 되어야"

입력 2019-06-2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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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캘리그라피 이화선 작가
▲한글 캘리그라피 이화선 작가

이화선 작가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커다란 붓으로 춤추듯이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피 퍼포먼스’ 분야를 개척한 현대 서예가다. 전국에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교육가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독특한 필체는 방송 타이틀로 여러 번 등장했다.

주요 기관에서 개막식 같은 행사를 할 때 벽 만한 크기의 흰 천을 세우고 전봇대 만한 붓으로 휘갈기는 ‘캘리 퍼포먼스’는 서예에 공연 요소를 가미한 것으로서 쉽게 흉내내기 힘든 이 작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이 작가가 최근 한글 캘리그라피의 저작권에 대한 이정표를 세우는 법정 분쟁에서 작은 승리를 거뒀다. 자신의 작품을 무단으로 베껴 사용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한 지재권 관련 형사소송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어떤 제자가 ‘선생님 인천 쪽에 글씨 서 준 적 있어요?’라고 하는 거에요. 그런 말을 몇 사람에 들었어요. 저는 제가 퍼포먼스도 많이 하고 글씨도 많이 쓰니까 그랬나 혹은 내 제자가 썼나? 하고 넘겼죠.”

그런데 한 제자가 인천을 여행가다가 이화선 작가 글씨체를 담은 커다란 간판을 사진 찍어 보내줬다. 비슷한데 뭔가 이상한 것이었다. 사진을 본 작가는 기가 막히고 황당했다. 자신이 MBC 방송 타이틀로 쓴 2개 글씨인 ‘백제 세계를 품다’와 ‘역사가 돈이다’를 조합했다. 그리고 다시 자기 글씨체를 모방해서 몇 글자를 더 써 넣은 것이다.

인천 연수구청은 특색 있는 마을을 조성하면서 ‘백제사신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 글씨 중 ‘백제’는 이 작가가 쓴 ‘백제 세계를 품다’에서 따 왔고, ‘사’는 ‘역사가 돈이다’에서 따왔다. 나머지 두 글자는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서예 글자 한 두개 쯤이야~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글자를 편집하고 왜곡하고 덧붙인 것이 분명했다.

MBC 방송 타이틀 글자인 ‘백제 세계를 품다’는 작가가 고심해서 썼다. 화려한 백제문화가 나아가려면 견고한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봤다.

이 작가가 인천 연수구청에 전화로 항의하니, 사과를 받기는 커녕 별걸 다 항의한다는 투의 응답이 돌아왔다. 몇 차례 더 전화로 한 항의에 담당과장의 사과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가는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을 손쉽게 모방 편집 왜곡하는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키운 제자들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했다. 정식으로 사과를 요청했다. 연수구청의 웹사이트에 잘못을 인정하는 팝업창이라도 띄워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물러설 수 없는 요구였다.

개인적인 사과 이상은 돌아오지 않으면서 결국 작가는 내용증명을 보내 합당한 보상과 공개사과를 요구했지만, 연수구청의 거부로 결국 법정까지 갔다.

그리고 저작권 재판에 대한 형사소송에서 인천지방법원은 3월 27일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연수구청의 용역을 맡아 일을 진행한 홍보대행사에게 저작권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연수구청은 형사책임은 면했다.

이 작가는 연수구청의 저작권 침해도 당연히 공개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영방송에 노출된 글씨를 그대로 사용했고,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대형설치물에 오래 동안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저작권에 대한 기본 인식과, 작가에 대한 존중, 그리고 노출범위 등을 생각하면 연수구청이 최대한 신중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누가 한글 서예의 발전을 연구하고, 노력해서 문화발전으로 연결시키려고 하겠느냐?”

이 작가는 “나의 주장이 타당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 잘못을 했어도 그대로 넘어가면 가르칠 명분을 잃어버린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기관에서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고의가 아니더라도 책임지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힘없는 하청업체의 잘못으로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관리책임이 있는 구청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사과하라는 요구가 그렇게 지나친 것이냐”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연수구청의 팝업창에라도 정식으로 사과문을 올렸으면 나도 소송을 제기할 명분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캘리그리피의 발전을 위해 앞장선 이 작가는 몇 년 전에도 저작권 침해에 대항해 싸운 적이 있다. 자신의 작품을 도용해서 전시회에 건 사람을 대상으로 제기한 저작권 형사소송에서 승리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중요한 선례를 남긴 것이다.

그는 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AIP) 동료와 선후배들의 조언과 전략수립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KAIST 지식재산전략 최고위과정(AIP)은 중소기업의 지식재산 역량 강화 및 사업화 능력 함양에 그 목표로 두고, 체계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중소벤처기업부는 기획 및 재정을, 특허법원은 교육과 실습을, 특허청은 교육과 홍보를, KAIST는 교육과정의 운영을 주관하는 국내 유일·최고의 지식재산전문 교육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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