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왔다 장보리’ 김순옥의 막장, 임성한과는 다르다?-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4-10-17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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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왔다 장보리’가 종영했다. 막장 드라마 논란은 마지막 방송에서도 터져나왔다. 희대의 악역 연민정(이유리)이 결국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녀와 헤어진 문지상의 새 연인으로 갑자기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이유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에 나왔던 민소희라는 캐릭터의 일종의 카메오인 셈이다. 반응은 엇갈렸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지나치다며 “시청자를 우롱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왔다 장보리’이지만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불리면서도 동시에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노랫가락처럼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드라마’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막장 썸을 타는 드라마.

이런 반응이 생긴 것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완성도도 낮은 반면, 그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이 보편적인 권선징악의 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대의 악역 연민정은 결국 모든 걸 잃었고, 반면 핍박받던 주인공 장보리(오연서)는 모든 걸 얻은 인물이 되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던 것을 드라마는 마지막 부분에 이뤄 주었다.

‘왔다 장보리’는 기존 막장 드라마들과 달리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기도 했다. 즉 낳은 부모라고 다 진짜 부모가 아니고, 기른 부모라고 다 가짜 부모가 아니라는 걸 ‘왔다 장보리’는 보여주었다. 혈연의 틀에 꽉 붙잡혀 있는 막장적 가족 드라마들이 흔히 보여주는 전개와는 사뭇 다르다. 혈연주의를 보여주는 막장 드라마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 이기주의의 극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왔다 장보리’를 쓴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막장의 대모라고 불리는 임성한식 막장과는 다르다는 반응이 나온다. 나름대로의 주제의식을 갖추고 있고(물론 그것이 너무 틀에 박힌 권선징악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그나마 드라마라는 극의 틀을 깨지는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오히려 ‘왔다 장보리’는 그 드라마트루기의 공식들을 너무 잘 실행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하는 갈등들과 해결들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론 지나치게 공식적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반면 임성한식 막장 드라마는 아예 이 드라마의 공식 틀 자체를 깨버리는 파행을 보여준다. ‘오로라 공주’가 방영될 때 시청자들이 퇴출 서명까지 했던 것은 그래서다. 드라마의 캐릭터란 적어도 작가가 내보일 때는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시청자와의 공유물인데, 임성한 작가는 그 약속을 깨버리고 제 맘대로 캐릭터들을 유린했다. 시청자가 캐릭터에 몰입해 드라마라는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유린은 어쩌면 시청자에 대한 유린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것이 ‘왔다 장보리’를 쓴 김순옥 작가와 ‘오로라 공주’의 파행을 보여준 임성한 작가의 차이다.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면서도 시청률 40%에 육박하는 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일종의 룰이 정해진 ‘드라마 게임’을 즐기기 위함이다. 마치 아이들이 하는 놀이 같은 이것은 다분히 퇴행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그 비현실적인 퇴행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막장 드라마를 보며 “저런 게 어딨어” 하고 말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더 심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우리는 신문 사회면의 작은 기사들을 통해 매일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현실은 우리가 늘 바라는 대로 결말이 지어지진 않는다. 그러니 공식화된 권선징악의 막장 드라마의 퇴행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는 적어도 연민정 같은 악녀의 끝장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그 틀은 적어도 유지해야 한다. 임성한식 파행으로는 카타르시스마저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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