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일본의 ‘고려 1100년 특별전’ 열풍

입력 2018-10-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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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 역사에서 고려는 특별한 존재다. 실질적으로 최초의 민족 통일국가였고, 생존을 걸고 북방 이민족들과 날카롭게 대립하면서도 찬란한 문화예술을 일구었다. 천하제일의 비색청자를 구워냈고 몽골의 핍박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그 절망의 시대에 금속활자로 책을 찍고 지극신심(至極信心)으로 불화를 그렸다. 외래문물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성이 있어 500년 문화는 생명력을 잃지 않았고, 그 생명력으로 창조된 아름다움은 우리를 매혹한다.

올해는 그 고려가 건국한 지 1100년이 되는 해다. 여기저기서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국·공립박물관을 비롯해서 민간에서 진행하는 전시 내용도 풍성하다.

일본도 전시 열기가 뜨겁다. 9월 1일 오사카(大阪) 동양도자미술관이 ‘고려청자전’을 시작했고, 10월 들어 나라(奈良)의 네이라쿠(寧樂)미술관과 야마토분가간(大和文華館)의 특별전이 잇달아 개막했다. 그 특별한 현장을 보고 싶어 몸은 진작부터 안달이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이어져 간사이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어느덧 10월 하순이었다.

오사카는 한반도 도래인(渡來人)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그 옛날 도래인들이 배를 타고 오갔을 오가와(大川)강 삼각주 나카노시마(中之島)에 자리한 동양도자미술관. 전시장에 들러서는 순간 눈이 부신다. 청자 243점. 아다카(安宅)컬렉션, 이병창컬렉션을 비롯해서 도쿄국립박물관, 세카이도(靜嘉堂)·네이라쿠 등 일본의 유명 미술관들이 소장해온 최상급 명품들이다. 일본에 있는 청자명품을 다 모아놓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시간을 잊은 듯 나는 전시장에 오래 머물렀다. 몇 번을 보았을까, 그 색은 영롱하고 자태는 우아했다. 아홉 마리 용이 새겨진 정병(淨甁)은 세밀가귀(細密可貴)했고 나한상(羅漢像)은 거칠어서 아름다웠다. 마음 같아서는 전시장에 누워 며칠 밤이라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오사카, 내가 돌아가야 하듯 저 청자들도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다! 그건 나의 바람일 뿐, 도래인들이 이곳에 터 잡고 살아왔듯이 저들도 이곳에 남을 것이다.

오사카에서 나라로 가는 철도편은 빠르고 편하다. 오사카 난바(難波)역에서 급행을 타면 네이라쿠미술관이 가까운 나라역까지 30분 남짓 걸린다. 거기서 야마토분가간도 그다지 멀지 않다. 이번 특별전이 3개 기관이 연대하여 같은 주제로 비슷한 시기에 열린 배경에는 이러한 교통접근성도 한몫했을까.

일본의 많은 사립미술관이 그렇듯 네이라쿠미술관은 이수엔(依水園)이라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특별전은 55점의 청자와 분청으로 구성되고 상감청자에서 인화분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동양도자미술관 전시와는 또 다른 감동이다. 몰입하는 관람객들의 표정에서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가치이자 소통 언어임을 읽는다.

전시장을 나오니 이수엔의 가을이었다. 자연의 빛과 소리를 미술과 조화시키려는 네이라쿠의 건축미학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다시 보면 자연을 인공적으로 변형해 새로이 구성하려는 의지를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연과 예술을 구분하면서 극단의 인공에서 자연이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자연과 함께하려는 우리와는 분명 다르다. 두 문화와 미감의 간격은 커 이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야마토분가간의 ‘건국 1100년 고려-금속공예의 빛과 신앙’은 왕후 귀족을 중심으로 꽃피운 고려의 금속공예를 집중 조명하는 공간이다. 금은상감 거울걸이를 비롯해 장신구와 범종, 정병, 불감(佛龕)과 사리용구 등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작품들도 여럿이다. 93점이 나왔으니 규모도 적지 않다. 청자전이 비취라는 색의 미학에 주목했다면, 이 전시는 신앙의 아름다움과 장식의 아름다움을 부각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불교적 사유체계로 해석하는 미학적 접근이 신선했다.

고려가 건국한 지 1100년이 흘렀고 우리와 일본은 미감의 간격을 조금씩 벌려왔다. 미감이 다르면 감흥도 다를 텐데, 우리와 다른 미의식을 가진 그들이 고려미술에 몰입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 다름의 의미를 생각하며 나는 분가간의 산책길을 오래 걸었다. 늦은 오후 미술관 벽에 내려앉은 가을색이 붉어서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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