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우의 지금여기] 금융권 채용비리, 그 뿌리에는

입력 2017-11-0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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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부 차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일찍이 “한 명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말로 인재경영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삼성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공식적인 신입사원 채용 외에 ‘특별채용’으로 S급(Super Exellent) 인재를 적극 발굴하는 것은 이 회장의 천재경영론에서 출발한다. 삼성의 경영자 평가에서 ‘뛰어난 인재의 발굴·영입’이 가장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반영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전상 ‘인재(人材)를 어떤 자리에 추천해 쓰게 한다’라는 뜻의 천거(薦擧), 이 천거가 삼성의 경영자 평가에서 가장 배점이 높은 항목이다. 예로부터 천거를 잘 해야 겸재(兼材·두루 능력을 갖춘 인재)로 불렸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본다는 의미다.

세종대왕은 관료들에게 “인재 세 명씩 천거하라”고 했고, 잘못 천거한 경우 이를 엄히 다스렸다고 한다. 결국 이를 표방한 삼성의 인재경영 전략이 불과 80년 만에 국내를 넘어 글로벌 ‘넘버원’ 기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천거를 통한 인재 등용은 공식시험이 갖는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선호했다고 한다. 음서제(蔭敍制)와 같이 ‘백(back)’이 든든한 젊은이에게만 열려 있는 등용문과 그 뿌리가 다르다 할 수 있다. 당초 음서제 역시 공거제(貢擧制)인 과거제도의 단점을 보완,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존 지배층을 확대 재생산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금융권의 채용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나자,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채용비리 관여자들은 처음부터 특별채용이 아닌 공개채용을 표방하고서도 지인의 자녀를 합격시키려고 갖은 사기술을 동원해 수많은 공채 지원자들을 기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공공의식은 고사하고, 상식조차 외면한 금융권의 채용비리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사회 기득권 계층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시장경제 체제의 기본 작동 원리인 자유경쟁 체제를 묵과한 것이 그 첫번째다. 정부가 ‘금융회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각종 규범으로 이중·삼중 울타리를 쳐 준 덕분에 ‘독과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더욱이 일반 기업과 업무 작동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업무 특수성과 별개의 인물이 채용·승진해도 해당 조직의 성과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오히려 정권과 외풍에 더 많이 흔들릴수록 ‘줄서기 문화’가 더욱 확산되면서 갖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을 것이다. 적어도 금융회사 채용 질서에서는 상식과 원칙을 무시한 채 편법과 부정한 방법들이 관습처럼 용인되는 구조였다는 얘기다.

과거 CEO 교체기마다 국내 금융권은 낙하산 인사와 줄서기로 몸살을 앓았다. 오죽했으면 인사 청탁이나 줄서기 등을 차단하기 위해 지위고하를 막론한 ‘원샷인사’까지 등장했을까. 이는 금융권을 자기 밥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의 실세들을 향한 최소한의 저항이었는지 모른다.

올바른 인재 천거는 기존 고위층의 투명하고 공정한 가치관 등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천거 역시 기존 지배층이나 고위층의 자녀들에게 집중될 경우 그 폐해는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고려는 음서제를 잘못 운영, 그 속에서 멸망의 씨앗을 키웠다. 그만큼 우리 금융권에 철저한 반성과 대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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