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샐러리맨의 꿈]'하늘의 별' 임원 겨우 땄는데 '별똥별' 신세라니…

입력 2012-03-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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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전 승진한 K 상무의 한숨

새벽 6시. 별을 보고 출근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퇴근이 빠른 것도 아니다. 퇴근길에도 별은 떠 있다. 집이라고 하지만 평일엔 채 5시간을 머물지 못한다. 와이프와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미만. 주말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을 모두 쉬는 날은 한 번도 없다. 골프라도 나가게 되면 이틀을 통째로 반납해야 한다. 하루는 꼭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2월 부장에서 상무보로 승진한 K상무는 1년 3개월 경력의 초짜 임원이다. 입사 후 만 21년 만에, 동기들에 비해서는 가장 빠르게 ‘별’을 달았다.

승진 명단이 발표됐을 때만 해도 K상무는 하늘을 날 것 같았다. 축하 술값만 한 달치 급여가 훨씬 더 들었다. 임원 연봉과 정산하게 될 퇴직금을 생각하면 껌값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임원생활을 하고 보니 모든 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수입 면에서는 매달 받는 급여가 오히려 부장 때보다 적다. 세전 기준으로야 부장 때보다 훨씬 많지만 고액소득에 대한 고율의 세금이 부과돼 통장에 입금되는 실제 수령액과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업무적으로도 임원들 뒤치다꺼리에 시달렸던 부장 시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장 시절 업무는 그대로이고 임원으로 처리해야 할 업무가 추가로 생겼다. 회의도 다반사다. 시도 때도 없이 소집되는 경우도 잦다.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게다가 외부에서 영입된 컨설팅 회사 출신의 젊은 임원 한 놈은 걸핏하면 효율성 어쩌고 하면서 간섭을 한다. 나이나 입사 경력으로는 한참 후배지만 직급은 상무로 한 직급이 높다. 아니꼬워도 참을 수 밖에.

기업의 별이라는 임원이 됐지만, 과거처럼 별도 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장 시절 앉았던 공간에 설치됐던 1m 높이의 칸막이를 좀더 높여준 것이 고작이다. 여비서? 웃기는 이야기다. 자동차도 지금까지 타고 다녔던 자신 소유 NF쏘나타를 그대로 타고 다닌다. 삼성을 비롯해 몇몇 그룹 임원들은 회사에서 어떤 자동차를 탈지 고르라고 한다지만 먼나라 이야기다. 전무 정도가 돼야 회사에서 자동차를 지급해 준다.

신분도 불안정해졌다. 부장까지는 정규직이었지만 임원은 언제 짤릴 지 알 수가 없다. 툭하면 구조조정이다 하는 세상에서, 흔히들 말하는 ‘임시직원’인 임원인 것이다. 실적만 좋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오너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너가 원하는 임원은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충성이 최우선 가치다.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지 않도록 조심도 해야 한다. 처신 잘못하면 내부 권력싸움에 말려들어 괜한 구설수와 함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컨설팅업체 아인스파트너가 조사한 ‘국내 100대 기업 퇴직임원 현황분석’에 따르면 임원 승진 1년 만에 17.35%가 퇴직했다. 또 15.48%는 2년 만에 퇴직했다. 결국 전체 임원의 3분의 1 정도가 승진한 지 2년을 못 넘기고 퇴직한다는 결론이다.

20~30대에 오늘날 굴지의 대기업을 창업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처럼은 아니더라도 이왕 시작한 직장생활, 임원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20여년을 버텼는데 눈앞의 현실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대리·과장 시절만 해도 임원은 군대의 장성에 비유되며 샐러리맨들에게는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현대건설 회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과 현대자동차 사장을 지낸 이계안 전 국회의원, 현대그룹 비서실장 출신으로 30 후반에 전무로 승진했던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 삼성증권 사장을 역임한 황영기 차병원그룹 부회장,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지원총괄 사장, 강유식 LG 부회장 등 30대에 임원으로 승진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이들을 보며 결코 허황한 꿈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임원은 예전의 그 임원이 아니다. 회사 규모가 커지다보니 임원의 수도 많아져 과거처럼 희소성도 떨어졌고, 위상도 낮아졌다. 인재들이 귀했던 회사 설립 초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득실거리는 인재들로 인해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30대에 임원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더러 30대 임원들이 배출되기는 하지만 이공계 전문기술인력이거나 외부영입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올해 30대 임원이 된 삼성전자 3인방도 TV 디자인 부문, 스마트폰 디자인 부문, 물류시스템 구축 등 전문기술인력이다. 사무직의 임원 승진은 정말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렸다.

최근 경총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대기업 임원이 될 확률은 평균 0.6%로, 평균 1%였던 2005년보다 더 낮아졌다. 반면 100대 기업 임원 승진 평균 연령은 2009년 50.0세에서 2010년 49.9세로 낮아지는가 싶더니 2011년 50.4세로 다시 높아졌다.

어떻든 대기업에서 임원 승진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떨어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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