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으로 산다는 것]"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애매한 노숙인 복지법

입력 2012-05-0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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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사업·예산, 지자체 이양…급식·의료지원 등 내용도 부실

1999년부터 노숙인 지원체계가 시행되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98년 IMF 이전까지는 ‘노숙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IMF 이후 집과 일자리를 잃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숫자가 4000명(서울시 기준)을 넘어서자 이들을 가리키는 ‘노숙인’ 명칭이 생겼다.

노숙인의 법적 정의는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 거리에서 생활하거나 그에 따라 노숙인쉼터에 입소한 18세 이상의 자’로, 생계수단이 없는 부랑인 및 거지와 구별된다.

사회 인식과 달리 노숙인들의 70%는 직업이 있다. 다만 일용직에 종사하고 주거지가 없어 극빈층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노숙인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생겨난 빈곤문제”라며 “넓은 범위에서는 고용·실업과 관계된 것이고 좁게 보면 주거권 문제이므로 주거 지원이 탈 노숙의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4월 25일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 철회 공공역사 홈리스 지원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역 정문 앞에서 '거리홈리스 서울역 집단 전입신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숙인 차별하는 ‘노숙인 복지법’= 노숙인이 사회에 등장한 지 15년. 우리나라 법에는 노숙인 관련법이 없었다. 지난해에 노숙인 관련법이 제정됐고 오는 6월부터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복지법)’이 시행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 동안 법이 없어 정부 차원에서 노숙인 사업 방향을 제정하지 못하고 예산을 마련할 수 없었다”며 “이번에 마련된 ‘노숙인 복지법’은 국가와 지자체 책임을 같이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숙인 복지법은 시민단체로부터 적지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여전히 노숙인 관련 예산을 마련할 법적 근거가 없어 예산 배당이 불가능하다. 노숙인 관련 사업을 시행할 수도 없다. 복지부가 2005년 관련 사업을 지자체로 일괄 이양했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노숙인을 위해 하는 것은 없다.

노숙인 복지법이 되려 노숙인을 차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선미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책임간사는 “노숙인 복지법은 노숙인의 차별받지 않은 권리에 대한 조항이 없고 시설운영위원회에 당사자(노숙인)가 삽입되지 못한 점, 급식이나 의료지원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복지부 시행규칙 초안에 삽입돼 노숙인등의 진료접근권을 보장하는 ‘특별한 사유 없이 노숙인 등에 대한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 이번 노숙인 복지법에는 빠졌다. 지난 2004년 서울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노숙인들의 입원·수술 중단 조치를 내린바 있다. 같은 일이 발생하면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

또 노숙인 시설 이용 시 ‘내무반식 생활의 어려움’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지만 시설 설치 운영기준과 관련해 ‘1실당 이용인원’은 규정하지 않았다.

◇탈 노숙 대신 지원에 그치는 정책, 노숙자 내쫓는 서울역= 주거를 지원하는 세계적인 정책 흐름과 달리 우리나라 노숙인 정책은 시설 위주다. 노숙인들을 지역사회에서 따로 분리해 시설에서 관리한 뒤 사회로 편입시키는 것이 우리 노숙인 지원의 핵심이다. 노숙인 관련 사업 서울시 예산은 한 해 300억원. 그 중 시설에 지원하는 비용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억원에 달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서구 사회는 1990년대 이후 노숙자 정책 방향을 시설에서 주거 지원 중심으로 바꿨다”며 “시설은 치료·재활을 위해 존재하고 ‘지역사회 중심의 실천’이란 방식으로 주거를 지원한 결과 노숙인들의 자활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민간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2005년부터 시작한 ‘임시주거지원사업’이 실시된 이래 연간 탈 노숙 비율은 80%에 이른다. 이 사업의 성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자 서울시에서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주거지원을 시작했다.

이와 함께 국철을 노숙인 지원 장소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과 미국은 노숙인들의 집합 장소인 국철을 노숙인 지원 거점으로 이용한다.

프랑스국철의 경우 1993년 실업율과 함께 역사에 노숙인들 수가 정점에 달하자 가스공사, 전력공사 등과 함께 ‘연대위원회(SNCF-Mission Slodarite)’를 조직해 탈 노숙 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국철역 주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을 쫓는 대신 이들이 노숙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양자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옹역, 마르세유-셍 샤를르 등에서 응급숙박시설 설치, 노숙인들을 위한 구직활동 지원, 우편물 수령을 위한 주소등록 등의 활동을 통해 노숙인들을 지원한 결과 1991년의 1125명이던 노숙자 수는 1999년에 347명으로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노숙인을 내쫓는 데 앞장서고 있다. 서울역은 지난해 8월부터 문을 닫는 야간에 노숙인을 강제 퇴거시키고 있다. 이동현 위원장은 “노숙인들을 공공장소에서 은폐하거나 적대하는 방법으로 홈리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국철의 공공성을 회복해 노숙인 지원 장소로 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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