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세상박론] 세월호 사고… 무책임의 표상이 된 어른들

입력 2014-04-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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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 아들이 내 얘기를 듣지 않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네요.” 최근 만난 한 학부모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 이 같이 자책했습니다.

학생들을 배에 놔둔 채 먼저 탈출한 선장. 한 번 내뱉은 말을 수차례 뒤집은 정부. 학우를 애타게 기다리는 단원고 학생의 촛불과 눈물. 걱정은 분노가 되고, 분노는 다시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 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어른들에게 비롯된 재앙입니다. 학교의 왕따 문제는 타인의 상처에 대한 무책임이라고 지적하던 어른들은 이제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공부해서 대학가라’는 판에 박힌 어구를 또 꺼내면 돌멩이를 맞을 지도 모릅니다.

‘책임 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번 사고를 통해 전 국민이 보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기존의 도덕과 삶의 가치는 옳은 것일까요. 청소년들이 이를 통째 부정한다고 해도 뭐라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문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다섯 살배기 조카가 떠올랐습니다. 제 스마트폰을 달라고 자꾸 보채길래, 실은 귀찮았습니다.

“밥 먹고 난 뒤 엄마한테 착한 일 하고 오면 줄께.” 맘에도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 뒤 은근슬쩍 제 스마트폰을 숨겼습니다. 조카가 “엄마는 왜 자꾸 거짓말을 해”라면서 형수를 애 먹이는 데, 저도 일조한 셈입니다. 어린 조카라고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곱씹었습니다.

세월호의 슬픔은 어른들의 양심에 비수가 되야 합니다. 학생들의 눈물을 모두 담아서 더욱 더 깊은 곳까지 꽂혀야 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사태를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어른이냐’고 묻기 전에 인간의 존재론을 꺼내야 합니다.

언론도 이번 세월호 보도에서 잘못한 것이 참 많습니다. 어른들이 일하는 직장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를 냈습니다. 누군가는 ‘신뢰를 잃은 오욕의 민낯’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이 시대 언론 종사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젊은 기자 중에는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이도 적지 않다고 들려옵니다.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이 도돌이표가 되어도 새 가치에 대한 용기를 쉽게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쓰라립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해줬으면 하는 비겁함이 가슴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 오늘의 반성이 또 잊혀질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때도 언론의 오보는 넘쳤습니다. 언론의 보도가 잘못됐다는 언론의 자성 역시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4년이 흐른 뒤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새김과 반성은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의 한 걸음의 무게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무게다’는 말이 있습니다. 잊지 말고 또 기억하고, 기억하지 못하면 몸에 새겨서라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랄한 비판입니다. 당당한 어른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당당하냐’고 수 없이 되묻는 어른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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