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환생(還生) -이승우 우리은행 인재개발부 부부장

입력 2014-03-07 10:57 수정 2014-03-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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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질 않았다.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병원에서조차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참으로 암담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2011년 5월, 의례적으로 받았던 종합건강검진에서 위암 진단을 받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수술불가라는 의사 소견. 이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병이 세상에 또 있을까? 어릴 때 천연두, 뇌염, 장티푸스 같은 병명들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모두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 흔한 감기조차 거의 걸려보지 않고 살아왔던, 정말 건강한 육체의 소유자였던 나였으니까.

인간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그 어떤 단어도 이보다 더 무서울 수는 없었다. 끝이 보이질 않았다. 과연 이겨낼 수 있을까? 서툰 기대는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서조차 치료를 거부한 나는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동고동락이 시작되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힘겨운 나날 속에 가족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삶에 대한 간절함으로 가득한 시간들이었다. 고향인 경주에 내려가 매일같이 절에 찾아가 참배를 해보기도 하고, 암에 좋다고 소문난 것들을 찾아다니기도 하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되어 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것을 나중에 들어 알게 되었다. 선망 증상이었다. 큰 수술을 한 뒤 나타나는 증상으로 수술 전후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내 손을 잡아주던 가족들의 따스함이었다.

수술 후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러던 중 2012년 2월, 사랑하는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긴 잠에서 깨어나 병상에서 불현듯 일어섰다. 그리고 나의 지갑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우리카드’를 집어들고 인근 백화점으로 아들 손을 잡고 달려갔다. 입학 축하 양복을 한 벌 사 입히기 위해서였다.

그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인가를 내몸에서 인지하였다. 작지만 요동치던 그것은 분명 생명이었다.

환생(還生). 나는 지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아직 완치는 아니지만 95% 수준의 회복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금부터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며 살고 싶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느꼈다.

암에 걸린 후부터 치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시간을 돌아보면 이는 ‘무절제하고 무계획적이었던 나의 삶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병상에 누워 있으며 정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해야 할 많은 분들, 고마워해야 할 수많은 일들, 보답하며 살아야 할 많은 인연들. 이 모든 것에 감사해하고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채 시인의 시(詩) 한 구절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이 아닌 사람이 없으되 내가 잡초가 되기 싫으니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다시 태어난 나의 인생. 정말이지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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