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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도의 세상 이야기] 추락하는 국제유가, 그 이후를 준비할 때

입력 2020-03-26 18:20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 서울대 객원교수

올해 초 배럴당 60달러를 상회하던 국제 원유가격이 20달러대로 진입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유가를 맞이한다. 몇 해 전 석유고갈론과 함께 상시적 고유가 시대를 이야기했는데 이제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유가가 이렇게 급락한 원인은 세계 원유시장의 큰손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가 생산 감축에 합의하지 못하자 사우디가 증산을 결정하면서 소위 유가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셰일혁명에 힘입어 2015년부터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등장하면서 기존 산유국들의 장악력이 떨어진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화석연료 소비가 줄고 친환경에너지로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석유 수요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은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이번 유각 급락은 80년대 국제 원유시장과 그 양상이 유사하다. 70년대 중반 중동 산유국들의 자원민족주의로 국제 원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그전까지는 수요 증가로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했었는데, 불황 속에서도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 세계경제를 장기 침체로 이끌었다. 이에 따라 석유 소비가 감소하면서 천연가스나 원자력발전과 같은 석유 대체 에너지의 보급이 확대되고, 북해나 아프리카 등 중동 이외의 지역에서 대형 유전이 개발되면서 유가 하락이 가속화했다. 당시 OPEC은 소비국에 판매하는 ‘기준유가’를 유지하기 위해 감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지만 회원국 간의 감산 이행 실패로 배럴당 40달러 하던 원유가가 80년대 중반에는 10달러 이하로 급락했다.

80년대 40%까지 차지하던 OPEC의 세계 원유시장 생산점유율이 지금은 30%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미국이 사우디와 러시아에 버금가는 하루 100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하고 수출 시장에 참여하면서 OPEC의 영향력은 더욱 떨어졌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전통적인 최대 산유국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감산 합의를 이끌었지만 이번엔 실패하였다. 사실 사우디와 러시아는 이해관계가 달라 근본적인 합의를 지속하기 어렵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은 생산 원유의 75% 이상을 수출하여 정부 재정을 꾸려가는 데 반해, 러시아는 70% 이상을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나머지를 수출하기 때문에 감산에 따른 부담이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대폭적인 감산을 하기보다 유가 하락을 감수하면서 수출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과거에도 사우디는 석유 수급 상황이 불안할 때 유가 안정을 위한 감산보다는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한 가격 경쟁을 선택하곤 했다. 세계시장에서 석유가 사라지는 마지막 날 생산되는 원유는 사우디의 유전이라 할 정도로 가장 낮은 생산비로 원유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석유시장은 과거 80년대와 다른 측면도 있다. 그동안 국제 석유시장은 통합되고 발전하였다. 과거 양자계약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시장이 국제시장 가격으로 통합되어, 지정학적 위험이 없다면 가격이 높아져도 수급 차질은 그다지 염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구나, 세계 주요 소비국들은 원유시장의 불안에 대비한 전략비축유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한편, 원유 거래에 금융자본이 참여하면서 단기간에 유가의 급등락이 심해지는 변동성이 더욱 커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유가 하락이 끝없이 계속될 수 있을까? 국제 원유가가 20달러 미만에서 장기간 유지된다면 미국의 셰일원유를 비롯해 중동 이외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경제성을 상실하여 상당수의 유전이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유전 개발에 대한 투자가 줄고 신규 유전에 대한 탐사가 중단되면서 점차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세계경제가 정상화되면 석유 소비가 다시 늘어나게 되고 석유시장을 떠났던 금융자본도 복귀할 것이다. 그리고 산유국 입장에서도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무한정 가격 인하 경쟁을 끌고 갈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석유가 여전히 항공, 해운, 자동차 등 수송 에너지는 물론 화학산업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는 만큼 단기간에 급속한 퇴장을 거론하기는 성급하다.

과거 이러한 유가의 약세는 우리 경제에 수입 부담을 줄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가 다원화되면서 유가 급락이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제품이나 화학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해외건설이나 플랜트 수주 산업의 위축을 가져온다. 또한 에너지 분야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경제성을 떨어뜨려 이에 참여한 많은 민간 사업자들의 경영 상황을 악화시키고 에너지 전환도 지체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유가 급락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고 산유국이 합의하면 다시 원상 복귀할 가능성이 큰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 에너지시장의 변동성에 대비한 에너지 안보 역량을 키우는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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