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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지금] ‘엎친 데 덮친’ 유럽, 코로나유로 채권 나오나

입력 2020-03-24 17:21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팟캐스팅 안쌤의유로톡 운영자

보통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고, 좋은 일은 아주 가끔 온다고 한다. 현재 ‘유럽’(유럽연합, EU) 상황이 그렇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위기 앞에서 EU 회원국들이 연대해 유럽 차원에서 공동대응을 강화해야 하지만 아직 구호에 불과하다.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 EU 주요 회원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상황이 제일 심각한데 아직 절정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다. 지난 1월 31일 EU에서 탈퇴한 영국에서는 보리스 존슨 총리가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백신이 없고 국민들이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발언했다가 폭풍 비난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대규모 재정 부양과 휴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일 큰 실수를 했다가 겨우 뒷수습을 했다. 통화정책회의에서 시장의 기대와 다르게 금리의 추가 인하도 없었고 회원국 국채와 회사채를 매입하는 추가적인 자산매입 규모도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결정적 실수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의 “회원국 국채의 금리 차이를 메우는 게 ECB 업무가 아니다”라는 발언이었다. EU 회원국 가운데 코로나19로 최대 위기를 겪는 이탈리아는 올해 -7.5% 정도의 극심한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리아에서 자금을 빼나가는데 ECB 총재가 이를 더 부채질했다. 중앙은행이 나서서 단일화폐 유로존을 사수하겠다는 발언이 있으리라는 일부에서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ECB는 18일 밤 긴급회의에서 7500억 유로(약 1030조8300억여 원)의 채권 추가 매입을 발표해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보유한 정책수단을 거의 다 써서 회원국들이 적극적으로 확장재정에 공조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

EU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은 지난 5년간 흑자재정을 기록했다. 독일은 현재까지 자국 우선 정책을 펼친다. 확장재정이 가능한 나라가 대규모로 돈을 풀고 EU 차원에서도 이를 보완해야 하는데 말이다. 독일은 헌법(기본법)에 명시된 사실상 균형재정 조항 때문에 정부 재정을 아주 인색하게 운영해왔다. 일단 메르켈 총리가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도전”이라며 코로나19가 이 조항의 예외임을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용 확장재정이 국내총생산(GDP)의 0.4%에 불과해 EU 회원국 가운데 최저 비중이다. 국내외 비난에 직면하자 추경예산을 4% 늘렸다. 프랑스는 일단 GDP의 1.8%로 책정했다.

최악의 위기 진앙지가 된 이탈리아는 EU에 다시 한번 배신감을 느꼈다. EU 회원국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을 때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대신 중국이 8일 긴급 의약품 31t을 지원한 데 이어 의료진 300명을 파견했다. 2017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난민 신청자들이 이탈리아로 대규모 몰려들었을 때도 다른 회원국들은 이탈리아의 도움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듬해 3월 총선에서 반이민, 반이슬람을 앞세운 북부동맹이 2위 정당으로 부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총재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우리는 이제껏 EU를 도왔지만 EU가 우리를 버렸다”며 공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2일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 후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하루 만에 0.4%포인드 치솟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채를 거의 투매하다시피 했다. ECB가 6일 만에 긴급 자금 투입을 결정한 것도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EU 경제가 최악의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U 일부에서는 코로나유로 채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회원국들이 경제력으로 지급보증을 해서 코로나 위기 극복용 단일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정부 재정에 덜 부담을 주면서 일부 EU 회원국, 특히 이탈리아처럼 최악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도울 수 있다. 당연히 가장 많은 부담을 지게 될 독일이 반대한다. 또 하나는 5000억 유로 규모의 단일화폐 유로존 구제금융기금인 유럽안정메커니즘(European Stability Mechanism, ESM)의 전용 여부이다. ESM은 원래 경제위기에 처한 회원국에 조건부 구제금융을 제공한다. 코로나19는 회원국 정책 실패에 따른 경제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조약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코로나유로 채권 발행과 ESM을 코로나 극복에 활용하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무래도 경기침체가 장기간 계속되고 이탈리아 등에서 포퓰리스트 세력이 더 크게 세력을 확장한다면 최후의 정책수단으로 채택될 수도 있다.

2010년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로존 경제위기는 2년 전 겨우 수습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모든 EU 회원국에 태풍급 경기침체가 예상된다. 독일조차 올해 -1.5% 정도의 경기하락이 전망된다. 거대한 경제 쓰나미 앞에서 EU 회원국 내 독일처럼 그래도 재정 여력이 있는 ‘북’유럽과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여력이 없는 ‘남’유럽 간의 갈등은 더 커져 갈 것이다. 이래저래 위기 앞에서 EU는 단결해 연대하자는 구호는 높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천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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