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거목들 21] ‘바이코리아’로 국민에 희망…외환위기가 낳은 증권가 스타

입력 2016-08-02 10:38 수정 2016-08-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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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IMF 외환위기가 배출한 증권가 스타, 한국경제에 숨통을 틔워준 인물.’

금융투자업계가 기억하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다. 현대그룹의 ‘가신’출신이었던 이 전 회장은 금융투자업계에서 불과 몇 년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배경은 1999년 3월 출시했던 ‘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 바이코리아펀드는 나오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3개월 만에 12조 원을 그러모았다. 이 돈이 증시에 투입되면서 그 해 7월 코스피지수는 1000포인트 벽을 뚫었다.

오늘날 이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이듬해 2000년 대우그룹 사태 등으로 펀드의 수익률이 고꾸라졌고 이 전 회장 본인도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논란에도 이 전 회장이 자본시장을 통해 아니라 외환위기로 침체해 있던 국민정서를 고무시켰다는 점을 부인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전 회장을 평가절하하는 이들조차도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면이다.

◇ 정주영 회장이 직접 발탁한 ‘판박이 사원’ = 이 전 회장은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했다. 서울대 상대 졸업생들의 1순위 진로였던 한국은행 입행 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이 전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던 1969년 3월 현대그룹에 입사했다.

이 전 회장은 안목과 저돌성 추진력이 장점인 이 회장의 경영스타일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입사 직후 정 명예회장이 신입사원에게 점심을 산 자리에서 곧바로 정 명예회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1986년까지 17년간 ‘왕회장’의 비서를 지낸 그는 이후 1987년 현대중공업 전무이사, 1994년 현대해상화재보험 부사장, 1996년 현대증권 대표이사 사장 등 그룹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경영 역량을 키웠다. 증권가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6년 1월 현대증권 부사장에 부임하면서다. 이후 사장을 거쳐 1999년 1월에는 현대증권 회장으로 선임됐다.

1996년 초 이 전 회장이 현대증권에 부사장으로 처음 갔을 때, 그의 눈에 현대증권은 ‘그렇고 그런’ 증권사로 보였다고 한다. 당시 현대증권에 있던 직원들은 이 전 회장은 “왜 현대처럼 일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듣기 일쑤였다고 전해진다.

현대증권에도 이 전 회장에게도 변화의 계기는 외환위기였다. 국내 증권업계를 수렁에 빠뜨렸던 ‘IMF 쇼크’가 이 전 회장에게 기회가 됐다. 당시 회사채 금리가 30% 선을 웃돌았다. 다른 회사들은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이 회장은 ‘역발상’에 나섰다. 이 전 회장은 “더는 금리가 오르지 않을 테니 우량기업의 회사채를 사들이라”고 지시했다.

현대증권 내부에서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지만 이 전 회장의 판단이 옳았다. 결국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높은 금리의 채권을 사들인 현대증권은 엄청난 이익을 낼 수 있었다. 훗날 이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금리가 떨어지지 않으면 기업들이 더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기업이 망하면 결국 나라도 망할 텐데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 ‘바이코리아 펀드’ 흥행…업계 10위권 현대증권 순식간에 1위로 = 1999년에는 일반투자자들에게 이익치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바이코리아(Buy Korea) 펀드’를 출시했다. 이름난 기업들이 연일 부도를 맞으며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해 있었지만 이 전 회장은 오히려 저평가된 한국 주식을 사야 할 때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달변가였던 이 전 회장은 전국에서 투자설명회를 열고 직접 강연자로 나서며 투자자들에게 환상을 심어줬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성공했다. 국내 펀드시장에 주식형 펀드 열풍이 불었다. 정보가 한정돼 있던 시절 이 회장의 한 마디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주부, 퇴직자, 대학생 등을 가리지 않고 시장에 몰렸다. 펀드는 출시 3개월여 만에 12조 원을 그러모았다. 10위권이던 현대증권은 순식간에 업계 1위가 됐다.

화려한 명성 뒤에는 긴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우사태’가 터지면서 이익치 성공신화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외국인들이 발을 빼면서 주가가 곤두박질 쳤다. 바이코리아 펀드는 손실로 돌아섰다. 대박의 꿈을 안고 이 펀드에 돈을 쏟아 넣은 사람이 줄줄이 파산했다. 금융당국은 현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가신그룹’을 정리하고자 했다. 결국 이 전 회장은 1999년 9월에 현대전자 주가조작 혐의로 실형을 받았다.

오늘날 이익치 회장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박한 편이다. 주가조작 혐의로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데다 펀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는 이미지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반인들에게 펀드투자를 대중화하고 침체해 있던 국민정서를 고무시켰다는 점만큼은 그의 업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회장이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에 큰 몫을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다.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이익치 바람’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이 전 회장이 꽉 막혀 있던 한국경제에 숨통을 틔워줬던 인물이었던 점은 분명하다”면서 “요즘처럼 활력을 잃은 증시를 보고 있으면 차라리 이 전 회장이 그리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프로필

1944년 : 서울 출생

1963년 : 경기고 졸업  

1969년 : 서울대 상대 경영학과 졸

1969년 : 현대건설 입사

1977년 : 현대건설 부장

1982년 : 현대엔진 전무

1987년 : 현대중공업 전무이사

1993년 : 현대해상화재보험 부사장

1996년 : 현대증권 대표이사 부사장

1996년 : 현대증권 대표이사 사장

1999년 ~ 2000년 : 현대증권 대표이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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