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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대고려전‘을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자

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고려 건국 1100년을 기념하는 ‘대고려전’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고려 역사와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에다 고려 특유의 개방과 포용 정신이 오늘날 시대정신과 맞물린 탓인지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연일 성황을 이루고 있다.

나는 1월 1일자 이 칼럼에서 ‘대고려전’의 감동을 오롯이 펼쳐 담았고, 그 후에도 전시장을 세 번 더 방문했다. 한 번 가면 두세 시간은 머물렀으니 이제는 각 전시 공간과 유물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진다.

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감동이 있었지만 아쉬움 또한 적지 않았다. 조급증에 휘둘려 졸속으로 준비한 탓인지 아니면 기획력의 빈곤 때문인지 공간 설정과 연출은 부자연스러웠고 곳곳에서 디테일의 부재가 노정되고 있었다. 나는 그 현장에서 새삼스럽게 ‘박물관이란 어떤,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전시는 왜 열리는 것일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가?’ 등등의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추슬러야 했다.

무릇 전시는 유물을 매개로 과거와 소통하고 현재와 공감하는 것이다. 당연히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최선(最選)의 유물을 구비하고 거기에 시대정신을 녹여내야 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은 450점이 넘는다. 그 가운데 전시 주제에 필연적으로 맞닿는 유물은 얼마인가? 해외 기관에서 빌려온 다수의 명품과 불화 등 일부를 빼면 그저 그렇고 그런 유물들을 고답적인 전시 방식에 따라 좁은 공간에 늘어놓은 것은 아닌가? 또 북한에서 태조 왕건상을 보내겠다는 확답도 받지 않은 채 이벤트를 벌일 때 낌새가 좀 이상했지만, 이번 전시가 500년 고려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참고로 청자 기린장식 향로가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다. 이 향로는 몇 년 전 한 상인이 중국 단동(丹東)에서 반입하여 내게 의견을 물어왔던 것인데, 상인들 사이에서 뚜껑과 몸체가 제짝이 아니라든가, 몸체는 뒷날 만들어진 신작이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 아무튼 기린과 같은 동물 장식 향로는 국내에도 명품이 많은데, 굳이 논란이 된 개인 소장품을 이런 기념비적인 전시에 내놓은 연유가 궁금하다.

이뿐이 아니다. 관람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안내와 해설을 겸한 글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에 오자도 있고 맞춤법이 틀린 곳도 여럿 있다. 설정된 각 공간에 부합하지 않은 유물과 설명도 있다. 일반인들은 그냥 지나칠지 모르지만…. 나는 그 내용을 현장 책임자에게 설명했고, 바로 수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유감스럽게도 전시 종료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도 바뀐 것은 없다.

전시도록과 관련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도록은 전시를 후세에 전하는 기록물이기도 하지만, 전시를 본 사람에게는 감동을 추억하고 가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간접적인 관람 공간이 된다. 그래서 전시 못지않게 공력을 쏟아야 하는 작업이 바로 도록 제작이다. 아쉽게도 도록 속의 글은 매끄럽지 못하고 편집은 평면적이다. 전시품의 기본적인 정보(크기, 연대 등)에 대한 영문 표기도 없다. 사정이 이럴진대 도록 속의 칼럼이나 논고의 영문초록을 어찌 기대할 것인가. 참고로 고려건국 1100년을 기념하여 열린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고려청자전 도록을 한번 보시길 권한다.

이번 대고려전에 대해 신문 방송 또는 SNS를 통해 공유되는 전시평은 감동과 칭찬 일색이다. 현실에 안주하는 비평 생태계에서 담론 문화는 생육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낙심해 있던 나는 일본의 미술관 관계자 몇 사람과 이번 전시에 대해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한국 역사와 문화의 상징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역량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표현은 완곡했지만 내게는 비수였다. 나는 몹시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의 힘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1000년이 되던 해는 일제강점기라 우리는 기념하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그 불편한 기억을 담아 100년의 기다림 끝에 열린 것이다. 이번 전시가 아쉽다고 해서 고려전을 매년, 아니 10년마다 열 것인가. 우리는 이 전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하여 100년 후를 준비해야 고려 건국 1200년 기념전은 제대로 열 것이 아닌가?

김치호 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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