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사에라] KTX 안에서

입력 2018-11-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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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형씨는 제사상에 왜 술을 올리는지 아쇼?”

남자는 창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니요, 알고 싶지 않아요. 제사상에 술을 올리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올리든 헛개차를 올리든 알고 싶지 않다구요. 그러니, 제발 조용히 잠 좀 자면서 갑시다. 창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또 그러질 못했다. 취객에게 그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 창수는 짧게 고개만 흔들었을 뿐이었다.

수요일 용산발 목포행 KTX 막차는 밤 10시 25분에 출발했다. 그날 오전 9시 광주 송정역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창수는 두 가지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저녁도 겨우 용산역 안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해결해야 했다. 낮에는 이번에 새로 지하주차장 조명 견적을 넣은 두 군데의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 창수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LED조명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사후관리까지 확실한지 설명해야 했다. 한 곳은 서대문구에 위치한 700가구 규모의 아파트였고, 다른 한 곳은 도봉구에 위치한 지은 지 20년이 넘은 노후 아파트였다.

저녁 7시에는 사장의 지시로 한 대학교수의 출판기념회 및 강연회 자리에 참석해야 했는데, 강연 주제는 ‘사마천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 한국 사람’이었다. 아니, 그냥 우리 눈으로 봐도 충분한데 왜 이천 년 전 사람 눈까지 동원하고 그런대요? 창수가 그런 표정으로 사장을 바라보니 돌아오는 답은 이런 것이었다.

“이 과장, 네가 그래서 아직 부족하다는 거야. 그 강 교수 부인이 이번에 일산에 있는 아파트 입주민대표가 되었다더라. 거기가 가구수만 1600이야, 1600.”

그러니까 출판기념회니 강연회니 건성으로 앉아 있다가 끝나면 사장 명함과 봉투를 전해주고 오라는 말씀. 그렇게 밤까지 서울 곳곳을 누비더라도 내일 아침 9시엔 무조건 출근해서 보고하라는 말씀. KTX 있잖아, KTX. 그거 생기니까 좀 좋아? 이젠 광주도 수도권이지, 뭐. 사장은 그런 말도 덧붙였다. 아니, 그렇게 가까운 곳이면 사장님이 직접 갔다 오시지 왜 죄 없는 직원을 괴롭히시나이까. 창수는 항변하고 싶었다. 직원 여섯 명 있는 회사에 이사, 상무, 차장, 부장, 과장 직함 달아주었으면 대접도 그만큼 해주실 것이지, 출장비라곤 달랑 교통비 10만 원 쥐여주면서 바라는 것은…. 하지만, 창수는 그런 말은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사장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대학교수는 강연회 자리에서 “가장 나쁜 정치는 백성과 재산을 두고 다투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창수는 비몽사몽 잠과 다투어야만 했다. 그리고 겨우 KTX에 올라타 본격적으로 잠을 자볼까 했는데, 아뿔싸, 바로 옆 좌석에 취객이 앉은 것이었다. 50대 중반쯤 보이는 남자 취객.

“이 술이라는 게 말입니다. 예부터 귀신하고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어요. 그러니까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는 거죠.”

아저씨, 술 많이 드시면 귀신이 아니고 철도 경찰하고 연결돼요. 제발, 그냥 조용히 주무시고 가세요. 창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또 그러질 못했다. 직원 여섯 명이 전부인 회사에서 4년 넘게 근무한 창수였다. 그는 참는 게 성격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그래서 오늘 술을 많이 마셨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 어머니 제삿날이어서… 우리 어머니 보고 싶어서…”

남자는 거기까지 말하곤 푹,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아, 결국 잠들었나? 창수는 기대했지만, 웬걸, 남자는 다시 고개를 들고 창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형씨는 양친 다 무고하시고?”

창수는 대학교 4학년 때 췌장암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그때부터 아버지하고만 단 둘이 살았다. 대답하지 않을까, 하다가 그러면 또 계속 물어볼 거 같아서 짧게 대답했다. 어쩌면 창수의 성격은 그때부터 변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어쩐지 세계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졌으니까.

“에구, 저런. 그럼 형씨도 술을 좀 많이 마셔야겠네. 그래야 어머님도 만나고 그러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곤 가방에서 주섬주섬 소주 한 병과 종이컵을 꺼내 좌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게 다 우리 좋자고 그러는 게 아니고, 어머님 뵈려고, 어머님께 인사드리려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내가 오늘도 우리 어머님을 만났는데…”

남자는 그러면서 창수에게 종이컵을 건넸다.

“아니 아니, 저는 몸이 좀 피곤해서…”

창수는 작게 손사래를 치면서 남자가 건네는 종이컵을 거절했다.

“이 사람이 이거…그렇게 안 봤는데 불효막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일세.”

남자가 불콰해진 눈을 부라리며 창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좌석 뒤에서 새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좀 조용히 갑시다!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요!”

중년 여성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창수의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다 있네, KTX가 무슨 포장마차도 아니고, 젊은 사람까지 저러고 있으니 참 나…. 창수는 좌석에서 일어나 그게 아니라고, 저는 일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또 그러질 못했다. 가만히, 마치 진짜 일행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웃긴 것은 술을 권하던 남자의 태도였다. 남자는 마치 자기가 그런 게 아니라는 듯 두 눈을 감고 잠든 자세를 취했다. 종이컵은 창수의 좌석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창수는 한동안 종이컵을 노려보았다. 매번 참기만 하는 자신, 어머니 생각 한번 하지 않는 자신, 집에 들어가도 늘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아버지…. 창수는 그러다가 벌컥, 단숨에 종이컵에 담겨 있던 소주를 마셨다. 그러곤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 오늘 선생님 어머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님을 뵈었다면서요?”

남자는 두 눈을 감은 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창수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그러더라구.”

남자는 다시 자는 시늉을 했다.

소설가·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 월 1회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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